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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규의 시원한 籠談] 조성원은 명지대의 해결사가 될 수 있을까?
조원규
기사작성일 : 2018-05-06 21:21

[점프볼=조원규 칼럼니스트] 1995년 동부 컨퍼런스 플레이오프 세미파이널 1차전. 인디아나 페이서스가 경기 종료 18.7초를 남기고 뉴욕 닉스에게 6점을 뒤진 상황. 레지 밀러는 18.5초 동안 8점을 성공시키며 팀에게 승리를 선물했고, 이후 페이서스의 4쿼터는 ‘밀러 타임’이 되었습니다. KBL에도 이와 비슷한 사내가 있었습니다. ‘4쿼터의 사나이’로 불렸던 조성원입니다. 그는 정규시즌보다 플레이오프에 더 강했고, 중요한 순간에 폭발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습니다. 결정적인 순간 조성원의 3점슛이 터지면서 관중들이 환호하고, 동시에 작전 타임을 알리는 부저 소리가 울리는 것은 익숙했던 기억입니다. 2017년 2월, 조성원은 모교 명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해 10월, 모교의 교수 겸 감독으로 부임해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5개월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모교 감독 데뷔전을 가진 조성원 감독을 명지대 체육관에서 만났습니다.

 

▲ 처음에 5분은 좋았어요

 

Q. 모교 감독으로 데뷔전을 가졌어요. 부담감은 없었나요? (3월 12일, 명지대는 대학리그 홈 개막전에서 건국대에 83-94로 패배했습니다.)

 

데뷔전이라고 떨리는 것은 없었습니다. 저보다 선수들이 부담을 많이 가질 수 있어서 부담을 갖지 말라고 얘기했어요. 우리 스타일대로, 우리가 준비한대로 하자고 주문했습니다.

 

Q. 데뷔전인데 아쉽게 패배했습니다. 

 

1쿼터와 2쿼터를 잘 넘기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시작하고 5분만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심하게 긍정적이에요(웃음). 첫 게임은 5분이지만 그것이 10분, 20분으로 늘어날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Q. 초반 좋은 분위기를 계속 이어가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가 팀을 지도한지 5개월입니다. 5개월 만에 팀 칼라를 확 바꾸지는 못해요. 우리 팀은 신장이 좋은 선수들이 없습니다. 우리가 몸을 부딪쳐서 이길 수 있는 상대는 거의 없어요. 그래서 몸을 부딪치기 전에 빠르게 공격하라고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선수들이 급해졌어요. 빠른 것과 급한 것은 다르다고 선수들에게 얘기했습니다.

 

Q. 경험의 문제일까요?

 

경험의 문제가 제일 크죠. 그래도…. 첫 게임하면서 어느 정도 자신감은 붙었다고 생각합니다. 졌지만 1쿼터 5분 동안 보여준 모습이 있어요. 신나서 하고, 재밌어 하고…. 처음부터 ‘에이 그럼 그렇지. 우리는 안 돼’라고 생각하면 무조건 집니다. 하기도 전에 지거든요. 할 수 있다고 격려해주면 선수들이 더 신나서 할 수 있습니다. 끌려가는 경기를 했지만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어요. 한 번 이기고 두 번 이기면 아이들도 확 달라집니다.

 

첫 경기를 치른 조성원 감독의 키워드는 ‘경험’과 ‘자신감’입니다. 이기는 경험을 통해서 자신감을 키우고, 그렇게 커진 자신감은 더 좋은 경기력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키워드를 강조했습니다. 그것은 ‘자부심’입니다.

 

 

▲ 명지대학교는 메리트가 있습니다

 

Q. 그런데 현실적으로 이길 수 있는 팀이 많지 않습니다.

 

그렇죠. 신입생들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선수들의 기본기가 많이 부족합니다. 더 큰 문제는, 제가 부임해서 보니 농구선수가 아니라 그냥 운동부였어요. 그냥 졸업장만 받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선수들도 있었고요. 그동안 명지대학교는 정말 갈 곳이 없으면 오는 학교로 소문이 많이 나 있었어요. 그런 인식을 바꾸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고, 그래서 분위기 자체를 바꾸려 하고 있습니다.

 

Q. 왜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졌을까요?

 

처음 부임해서 선수들을 일대일로 미팅했습니다. 졸업하고 명지대를 찾아오겠냐고 물어봤는데 대부분이 아니래요. 자부심이 없다는 것이죠. 그냥 졸업장만 따겠다는 생각이 큰 것 같았습니다. 우동현이나 그렇지 않은 몇몇 선수들도 있지만 대체로 명지대 농구부로서의 자부심이 낮았습니다. 먼저 자부심을 키우고, 그 이후에 정신적인 면이나 육체적인 면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Q. 선수 스카우트도 어려움이 있어요.

 

우리 학교의 유일한 2m 빅맨 이용휘가 배구로 갔습니다. 표경도(193cm)가 제일 커요. 큰 선수를 뽑는 것이 가장 급합니다. 그래서 지방으로 많이 다니고 있고. 신입생들에게 우리 학교는 메리트가 있습니다. 어차피 프로에 갈 생각이면 1학년 때부터 뛰는 것이 낫잖아요. 우리 학교는 능력만 있으면 1, 2학년 때부터 베스트로 뛸 수 있습니다.

 

Q. 그리고 또 어떤 메리트가 있을까요?

 

저희 세대는 선수생활을 하면서 참 많이 맞았어요. 그래서 저는 아이들을 다그치지 않고 기다려주려고 합니다. 이기면 좋지만, 져도 안됐던 부분을 더 연습해서 보완을 하면 되요. 운동시간을 늘리고 욕하면, 따라오게 만들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저도 그렇게 운동을 해봤지만 남는 게 없어요. 무서워서 뛴 기억 밖에 없어요. 안 맞으려고. 이해를 시켜야죠. 열심히 안하는 선수가 있어도 화를 안내요. 안아서 쉬라고 얘기합니다. “뛰려고 나오는 건데 걸어 다니면 나랑 같이 앉아 있을 거야”라고 이야기 합니다(웃음).

 

그 외에도 몇 가지가 있는데…. 체력훈련은 체육관에서만 합니다. 산이나 트랙이나 바닷가는 별도로 시키지 않아요. 저도 해봤는데 별로 도움이 안  되요. 체육관에서 경기하는데 산이나 트랙을 뛸 이유가 없습니다. 기술적인 부분에서 많은 것을 바꾸려고 하지 않고, 눈높이를 맞추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분위기가 좋아요. 경기를 봐서 아시겠지만, 지고 있다고 선수들이 위축되거나 하지 않습니다. 즐기는 것이 중요하죠.

 

Q. 그런데 성적이 안 좋으면 주목 받기 쉽지 않고, 프로 진출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어요.그런 점에서 어려움은 없을까요?

 

그런 점도 있죠. 그런데 프로진출만이 동기부여는 아닙니다. 올해 3명이 졸업했는데 2명이 프로에 못 갔어요. 그 중에 한 명이 저를 찾아와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래서 책을 추천해주고, 공부에 조언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했습니다. 프로진출 외에도 다른 기회는 있습니다.

 

Q. 은퇴 이후 공부를 한 것이 그런 점에서 도움이 될 수도 있겠네요.

 

솔직히 지금도 공부보다 농구가 쉬워요. 그런데 부모님이 박사 학위를 받으라고 말씀을 하셔서…. 운동선수의 졸업 이후 진로에 대한 연구를 친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학교 선배로서 또 농구를 했던 선배로서 그런 부분에서 멘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륙도, 사오정, 삼팔선. 모두 직장인들의 은퇴시기가 빨라졌음을 표현하는 말들입니다. 이태백과 다포세대. 청년들의 취업난과 절망을 표현하는 말들입니다. 언어는 사회상을 반영합니다. 진로의 선택과 전환은 시기의 문제일 뿐, 살면서 계속 부딪히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대학선수에게 프로진출은 전체 인생설계의 일부가 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쉽지 않습니다. 특히 학업과 일정하게 거리가 있었던 엘리트 선수들에게 프로진출은 일반적인 취업 이상의 의미일 수 있습니다. 조성원 감독은 농구 지도자를 넘어 인생 멘토로서의 역할을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 운동을 잘해도 좋은 지도자를 만나지 못하면

 

Q. 명지대를 졸업한 가장 성공한 선수 중의 하나에요. 그런데 농구를 늦게 시작했어요. 계기가 있었나요?

 

중학교 때 반 대항 체육대회를 나갔어요. 농구와 축구가 있었는데, 농구 감독님이 수업 끝나면 농구를 하래요. 모래 바닥에서 운동하다 체육관에서 운동하니까 너무 좋았죠. 그런데 어느 순간에 제가 선수 등록이 돼 있었습니다. 그게 3학년 때였습니다. 그렇게 운동을 시작했죠. (배재)중학교에 3학년이 8명인데 고등학교에서 4명만 받았습니다. 나머지 4명은 홍대부고로 갔고…. 초등학교 때부터 했던 애들과 차이가 컸죠.

 

Q. 그런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는 스카우트 제의가 많았어요(웃음).

 

고등학교 1학년 때 운동을 그만두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 때부터 하루에 다섯 번 운동을 했습니다. 새벽, 오전, 오후, 야간, 그리고 새벽 3시. 초등학교부터 운동한 얘들은 저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운동했잖아요. 그 아이들을 따라가려면, 그 시간을 채우는 방법 외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AFKN 아시죠? 매일 AFKN의 스포츠 뉴스를 녹화해서 농구만 봤습니다. 그것을 거의 1년 동안 했어요. 밤 11시에 자서 새벽 3시에 일어나 잠깐 운동하고 또 자고. 새벽 6시에 일어나 또 운동하고. (※ 주한미군을 위한 방송, AFKN은 ‘American Forces Korean Network’의 약자로, 1990년대까지 미국프로농구를 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였습니다.)

 

Q. 고려대의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명지대로 진학한 이유는 뭔가요?

 

연세대도 오라고 했습니다(웃음). 아버지가 연세대를 나오셨고, 저도 연세대를 가고 싶었어요. 명지대는 농구부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생각이 달랐어요. 고등학교 올 때 묻어서 왔으니 대학교 갈 때는 데리고 가야 한다고 하셨죠. 그래서 동기 한 명과 함께 명지대로 왔습니다.

 

Q. 후회하지는 않았어요?

 

1학년 때 전패하고, 2학년 때 딱 한 번을 이겼습니다. 우승한 기분이었어요(웃음). 그런데 연대에 가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연대 멤버가 너무 좋았어요. 문경은 감독은 저와 동기고, 다음 해에 이상민 감독도 들어왔죠. 게임을 뛸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습니다. 1학년부터 뛸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Q. 20년간 농구선수로 많은 경기를 했어요. 어느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1997-1998 챔피언결정전 3차전이 제게는 인생경기에요. 그 때 제가 농구에 대해 눈을 딱 떴습니다. (경기 종료 4초를 남기고) 코너에서 3점슛이 들어가 이겼어요. 그 전에 자유투를 얻었는데 두 개를 다 실패했죠. 역적이 될 뻔했습니다. 경기 끝나고 신선우 감독님이 “우리 팀에서 슛은 조성원이 제일 좋다”고 기자들 앞에서 말씀하셨어요. 그 말이 저에게는 어마어마한 힘을 줬습니다. 감독님이 칭찬에 되게 인색한 분이세요. 그런 분의 말씀이라 더 힘이 됐어요.

 

Q. 한 선수의 운명을 바꾼 건가요?

 

운동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 선생님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프로 은퇴할 때까지 주전으로 뛸 수 있었는데, 선생님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운동을 아무리 잘해도 좋은 지도자를 만나지 못하면 성공 못한다고 생각해요.

 

Q. 좋은 지도자는 어떤 지도자일까요?

 

제자들이 많이 찾아오는 지도자가 아닐까요? 그런 지도자가 되고 싶어요(웃음).

 

 

▲ 끝났다고 생각하면 끝나요

 

Q. 은퇴하고 바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는데 결과는 좋지 않았어요.

 

제가 선택을 잘못했어요. 공부를 더 했어야 했는데 욕심을 부렸고, 주위 분들과 상의를 했어야 하는데 전혀 상의를 안했습니다. 코트에 있는 시간보다 벤치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은퇴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잘못된 생각이었어요. 선배로서 벤치에 있으면, 벤치에서 게임 못 뛰는 선수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얘기들이 많은데 저만 생각했습니다.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시간이 많았다면, 저도 보다 준비된 지도자가 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주연이 되고 싶었던 거죠. 조연의 가치를 몰랐습니다.

 

Q. ‘이조추 트리오’의 두 명은 프로 감독을 하고 있습니다. 자극이 되지는 않나요?

 

전혀요. 아이들 가르치는 것이 재밌어요. 물론 스트레스도 받죠. 주위에서 보는 시선도 있겠고…. 저에 대해서 사람들이 평가를 하잖아요. 그런데 신경을 안 써요. 스카우트 재밌고, 4년 동안 사람 만들고 선수 만드는 것에 대한 보람도 있습니다. 졸업하고 찾아오면 즐겁고. 프로감독은 연봉을 많이 주니까 좋죠. 좋은데 돈이야 있다가도 없는 거고. 저는 그런 것에 대한 욕심은 없어요. 과거에 있던 나쁜 것들도 다 없앴어요. 선생님들 냉장고에 간식 넣겠다고 해서, 하지 말라고 했어요. 추석이면 선물을 하잖아요. 그것도 없앴어요. 먹고 싶으면 내가 사먹겠다고 했죠. 냉장고에 있는 커피 있잖아요. 그거 다 제가 사서 넣었어요.


Q. 4학년 우동현 선수가 궁금하다는 프로농구 팬들이 많아요.

 

좋은 선수에요. 스피드도 있고 탄력도 있고 슛도 빵빵 올라가 주고 하니까. 3점슛을 점프슛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설명해주고 있는데 성실해서 잘 따라오고 있어요. 제 대학시절보다 동현이가 더 나아요. 저는 상무 때까지 점프슛을 못 던졌어요. 다 세트슛이었죠. 1번은 아니라고 얘기했어요. 너는 2번이라고. 우동현이 3학년이라면 저 같은 스타일로 만들고 싶었어요. 물론 아직 시간은 있죠.

 

Q. 감독님의 하루 5번 훈련했던 얘기도 했나요? 동기부여 차원에서(웃음).

 

제가 운동한 얘기들을 해줘도 믿지 않아요. 이상민 감독이 고등학교 때 새벽에 운동하는 걸 왔었어요. 이 감독도 욕심이 많거든요. 며칠 하더니 못해요. 그 욕심 많은 친구도 힘들어서 못 따라 해요. 그 다음부터 안 나왔는데…. 그런 부분들을 다 얘기를 안 하죠(웃음).

 

Q. 작년에 한 명만 프로에 갔어요. 올해도 프로에 못 가는 선수들이 있을 수 있어요. 부담이 되지 않을까요?

 

프로를 못 갔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것을 기회라고 생각해야지, 끝났다고 생각하면 끝나요. 그 아이들에게 프로를 못 간 것이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그 기회를 또 한 번 잡으라는 것이죠. 그것을 도와주는 것이 선배로서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성원 감독이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자부심’과 ‘자신감’입니다. 지금 명지대 선수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 앞으로 함께 만들어갈 과제가 그것이기 때문이겠죠. 고등학교 때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선수들이 대부분입니다. 최근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습니다. 명지대는 그 해결사로 ‘클러치의 사나이’를 선택했습니다. 이 사내는 농구를 ‘선생님’이라고 표현합니다. 농구를 통해서 지금까지 많은 것을 배워 왔고, 앞으로도 배울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만년 약체 팀의 감독과 선수들. 배움과 배움의 선순환 고리를 순조롭게 이어갈 수 있을까요? 그것을 지켜보는 것도 올해 대학농구를 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입니다.

 

 

#사진=유용우 기자
#본 기사는 점프볼 4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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