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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챔프전 MVP 김정은 ‘우리’에서 봄(春)을 만나다
손대범(subradio@jumpball.co.kr)
기사작성일 : 2018-04-14 09:29

[점프볼=손대범 기자] “우리은행에서 잘 하겠다고 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개막이네요. 많이 긴장되고 설레기도 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2017-2018시즌 개막 하루 전, 아산 우리은행 김정은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분전을 다짐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남들 앞에서야 웃으며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지만, 안 보는 곳에서는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단다.

 

 자유계약선수 신분으로 우리은행 계약을 결심한 뒤부터 개막할 때까지, 아니 시즌을 치르는 와중에도 김정은 앞에는 매일 신세계가 펼쳐졌다. 말로만 듣던 챔피언 팀의 훈련 방식과 훈련양을 따라가느라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내가 해낼 수 있을까’라는 스스로에 대한 걱정은 사치였다. 그럴 틈이 없었다. 훈련이 끝난 뒤에는 힘들다며 몇 번이고 임영희, 박혜진에게 투정(?)과 엄살을 부렸지만 다시 코트에 부름을 받고 나설 때는 이를 악물었다. 팀 사정상 센터와 파워포워드까지 맡아야 했던 김정은. 지난 3월 21일, 그녀 손에 들린 챔피언결정전 MVP 트로피는 그 노력에 대한 보상이었다.

 

3월에는 ‘김정은의 눈물’이 화두였다. 정규리그에서 1위를 확정지었던 마지막 경기에서도, 통합 우승을 결정짓던 청주 KB스타즈와의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도 김정은은 눈물을 펑펑 쏟았다. 감격의 눈물이었다. 이미 우승을 몇 년째 경험해온 임영희와 박혜진, 그리고 우리은행 팬들은 ‘촌스럽다’고 짓궂게 놀렸다지만, 김정은에게는 그 놀림조차 행복으로 느껴졌던 모양.

 

당연했다. ‘유망주’로 WKBL 무대에 데뷔해 올스타와 국가대표를 거치며 국내 정상급 스코어러로 올라섰지만 정작 2018년 3월이 되기 전까지는 한 번도 우승기념 그물 커팅식이란 걸 해본 적이 없었다. KEB하나은행에서 결승 무대에 진출, 김이슬을 꼭 붙잡고 눈물을 왈칵 쏟은 그 감격의 순간은 오로지 사진 속에 담겨있을 뿐이다. 당시 결승 진출을 도왔던 첼시 리는 국적 사기 문제로 영구히 퇴출되었고, 그 시즌 KEB하나은행의 기록은 삭제되었다. 당연히 그녀에게 유일했던 챔피언결정전 전적도 삭제. 이제는 WKBL 기록 프로그램을 이용해도 당시 경기 박스스코어를 볼 수가 없다.

 

그런 김정은에게 오랫동안 남았던 단 하나의 숙제는 바로 우승이었지만, 이마저도 은퇴 이전에 경험할 지 장담하기 어려웠다. 부상 탓이었다. 통증을 참고 주사를 맞아가며 뛰었던 챔피언결정전 기록은 삭제됐고, 남은 건 후유증뿐이었다. 연봉은 높은데 결장 경기는 늘어났고, 경기에 투입되어도 돌고래 같이 솟구쳐 올라 던지는 특유의 풀업 점퍼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먹튀’, ‘퇴물’이었다. 팬들 반응도 야속한데 구단에서도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한 대우가 이전 같지 않으니 김정은도 상처를 받았다. 남은 건 명예회복이란 네 글자뿐. 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었을 때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이유다.

 

 

 

우리은행과의 동행
눈물로 시작해 눈물로 끝나다

 

그 와중에 우리은행 구단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위성우 감독은 김정은이 팀을 떠날 수도 있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은행행도 관심을 두고 있을 것이란 사실을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 정도 선수가 굳이 고생하러 올 이유가 없다고 본 것. 이는 구단도 마찬가지. 영입 경쟁이 펼쳐질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자신들이 그 대열에 끼게 되리란 건 예상치 못했던 것. 김정은의 연락처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 김정은이 시장에 나온다고 발표가 나던 날, 우리은행은 양지희 은퇴 보도자료를 내고 고심하던 상황이었다.

 

결국 전 구단이 ‘김정은 잡기’ 경쟁에 돌입했다. 모두들 김정은의 몸 상태를 배려해준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김정은은 적잖은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은 한 발 더 나아갔다 “너의 재기를 돕겠다. 다음 시즌을 못 뛰게 되더라도 좋다.” 김정은의 마음이 기운 결정적 계기가 됐다. 부담을 덜고 회복과 재활에 집중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농구를 더 잘 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이는 곧 명예회복으로도 직결될 테니 말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곳도 있었지만 김정은은 장위동에 짐을 풀기로 결심했다.

 

계약 직후 치료차 일본을 다녀오고 바로 몸을 만들었다. 생각만큼 쉬는 기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만, 본격적으로 시작된 훈련이 고되었을 뿐이다. 김정은은 “운동에 대한 상식을 파괴했다. 내 발로 스스로 고생길에 들어선 것 같아 후회한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그 강인한 이미지의 나탈리 어천와조차 합류 이틀 만에 눈물을 보였다는 ‘지옥 훈련’은 높은 강도와 세밀함이 혼합된 우리은행만의 자랑거리. 그간 많은 팀들이 우리은행을 잡겠다며 하루 훈련량을 늘려왔지만 결코 따라잡지 못한 이유는 그 훈련 속에 감춰진 세밀함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출전시간대비 파울이 많았던 양지희가 출전시간을 늘리고, 5번 우승에 공헌할 수 있었던 것도 여기서 기인한다.

 

그 디테일한 방식이 김정은에게도 적용됐다. 일단 우리은행에 합류한 이상 위성우 감독은의 불호령은 세금처럼 피할 수 없는 존재였다. 시즌이 끝날 무렵, 위성우 감독은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고 인정했다. “다른 선수들은 하도 내 잔소리를 많이 들어서 무덤덤했는데, 정은이는 처음이라 아직도 약발이 잘 먹힌다(웃음).”

 

그러나 위성우 감독의 호통에는 이유는 있었다. 재기를 위해서는 남들보다 더 혹독해야 했다. 위 감독은 모든 선수들에 대해 “따라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훈련 강도를 높게 잡지만, 못 따라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해왔다. 프로로서 성공하고 싶다면, 아니 그 분야의 최고가 되고 싶다면 죽을힘을 다해 자신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김)정은이는 정말 미안할 정도로 열심히 해줬다. 본인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처음 훈련할 때도 ‘열심히 해라. 자신을 속이지 말라’고 말했다. 정은이는 그걸 해냈다”라고 말했다.

 

임영희는 “이번 시즌은 정은이 눈물 닦아주다가 시즌이 다 지나간 것 같다”고 웃었다. 그만큼 훈련이 힘들었다. 박혜진도 “괜히 오라 그래서 고생시키는 것 같아 미안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김정은이 팀에 녹아들면 녹아들수록, 위성우 감독과 선수들은 확신할 수 있었다. 6년 연속 우승도 가능하겠다는 것을. 실제로 우리은행은 평소보다 많이 늦긴 했지만 기어이 시즌 마지막 날 6년 연속 정규리그 1위를 확정지었다. 늦었기에 그만큼 짜릿했다.

 

 

 

선수들 : 김정은이 동기부여 됐다

 

스타 선수들에게는 이름만 대면 연상되는 시그니처 동작이 있다. 나는 해설할 때 종종 ‘전매특허’라는 말로 그 동작을 포장했다. 예를 들면 ‘이미선’하면, 자신의 앞에서 재주(?)를 부리는 매치업 상대들의 공을 툭 쳐서 스틸을 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변연하는 스텝백의 진수를 보여줬다. 알고도 못 막는 무기였다. 임영희는 스크린을 타고 나와 던지는 중거리슛이 정상급이다.

 

일단 스크린만 한 번 걸리면 그 슛은 들어갔다고 보고 리바운드 참여할 생각부터 하는 게 나을 정도다. 김정은에게도 그런 동작이 있다. 전진 과정에서 갑자기 멈춰서 폭발적으로 차고 올라가 던지는 점프슛이다. 일명 ‘stop and pop’이라고도 불렸던 이 슛의 정확도는 김정은을 따라가지 못했다. 과거 점프볼 기술강좌 코너에서 김정은은 이 슛을 김진영(당시 숭의여고, 현 KB)에게 전수한 바 있다. “수비자는 뒤로 스텝을 밟기 때문에 불리한 입장이다. 공격자가 갑자기 올라가면 반응하는 게 어렵다”라며 자신의 주무기를 설명했다. 워낙 하드웨어도 탄탄해 포스트 업에 이은 턴 어라운드 페이더웨이 슛도 정확도가 높았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그 빈도가 줄었다. 몸이 안 좋았고, 팀 전력도 약해 집중견제가 심했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에서 김정은은 그 무기를 다시 ‘잘’ 쓰기 시작했다. 챔피언결정전에서 펄펄 날았다. 1차전 14점에 이어 2차전에서는 18점을 기록했다. 3점슛은 4개나 넣었는데 특히 4쿼터에 넣은 3점슛으로 한풀 꺾였던 우리은행의 기세를 다시 끌어올렸다. 위성우 감독도 이때 승리를 예감했다는 후문. 사실, 3차전에서 가장 빛났던 이는 임영희와 홍보람이었다. 그러나 기자단 투표로 진행된 챔피언결정전 시리즈 MVP는 김정은에게 돌아갔다. 84표 중 53표를 얻었다. 박지수를 막고, 상대 추격세에 찬물을 끼얹은 주역임을 인정받은 것이다.

 

위성우 감독은 “김정은은 국가대표팀에서 같이 생활해봤던 선수다.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 기쁘다. 내가 아는 김정은이라면 충분히 극복하고 재기할 것이라 봤는데 기쁘다”라며 “늘 말했지만 정은이가 없었다면 우리는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 본인의 간절함 덕분이었다”라며 제자의 재기를 축하했다.

 

김정은 역시 MVP 선정 직후 인터뷰에서 지난날을 돌아봤다. 플레이오프에는 가본 적 있어도 우승에 가까워지지 못했던 지난 13년. 김정은은 “너무 힘들었다. 매번 열심히 했지만, 성적과 거리가 먼 선수였다. 자괴감이 들었고, 부담감도 있었다. ‘그만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있었다”라며, “가끔 인터넷을 보면 ‘퇴물’, ‘한물간 선수’, ‘먹튀’라는 말이 있었다. 비시즌 훈련을 착실히 했다고 해도, 두 가지가 걱정됐다. 부상이 많아 트라우마가 있었고, 저 때문에 위성우 감독님의 지도력에 흠이 날까 걱정이었다. 한 시즌 내내 힘들었고, 저를 괴롭혔다. 하지만 동기부여도 됐다. 감독님을 만나고, 좋은 팀을 만나 우승을 했다. 더 기쁘고 값지다”고 웃었다.

 

그런데 그 간절함은 김정은 만이 가진 것이 아니었다. 박혜진은 ‘언니 때문에 우승해야 할 이유가 더 생겼다’고 했다. 임영희는 정규리그 직후 “네가 챔피언결정전에 올라 MVP가 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코트 위에서는 김정은이 넘어지거나 지쳐할 때 모질게 대했지만, 코트 밖에서는 무한동력이 되어주었다.

 

김정은은 “울면서 뛸 때도 있었고, 자다가 쥐가 오기도 했다. 그때마다 (임)영희 언니가 ‘이것만 이겨내면 보상을 받는다’고 격려했다. 보상(우승)을 받고 나니 왜 그런 얘기를 했는지 알겠다. 감사하다”고 말했다.

 

위성우 감독은 김정은을 중심으로 새로이 똘똘 뭉친 우리은행을 보며 대견해 했다. 이른바 ‘원 팀’으로 거듭난 것에 고마움을 표한 것이다. “사실 다른 팀에서 잘 했던 선수가 온 것인데도 임영희와 박혜진이 적응을 잘 도와주었다. 견제를 한다거나 텃세를 부리는 일도 없었다. 감독 입장에서는 정말 고마운 일이다. 사실 코칭스태프가 코트 밖에서의 행동까지 일일이 다 간섭하고 관여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김정은이 잘 녹아들 수 있게 도운 선수들이 고마웠다. 그 과정을 보면서 ‘아! 참 좋은 팀이 되었구나!’라는 것도 느꼈다.”

 

우승이 결정된 직후 선수들은 위성우 감독, 전주원, 박성배 코치 뿐 아니라 김정은을 위한 헹가래도 준비했다. 이적 후 성공적으로 녹아들며 우승에 공헌한 새 주역을 축하하는 시간이었다.

 

 

 

남편에게 제일 고마워

 

김정은은 2016년 4월, 한국전력 소속 럭비선수 정대익(34) 씨와 화촉을 올렸다. 전 동료 김지현의 소개로 이뤄졌다. 운동선수답게 그는 아내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고 있었다. 훈련 때문에 신혼여행을 나중으로 미루겠다는 김정은의 뜻도 선뜻 받아들였을 정도.

 

이적 직후 김정은 부부를 잠시 만난 적이 있다. 남편은 아내 김정은의 고충을 이해하고, 또 재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도 ‘몸이든 마음이든 더 고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더 잘 하고 싶다’는 그 간절함을 알았기에 이내 다시 한 번 ‘김정은 바라기’가 되어 우리은행 응원단에 동참했다. 행여 본인이 경기장에 왔다가 패할까 걱정돼 우승이 확정되던 날에도 현장을 찾지 않았을 정도.

 

김정은은 “남편 소속팀 한국전력은 여자프로농구로 치면 우리은행 같은 팀이다. 개막하고 2연패 후 내가 ‘불운의 아이콘’이 되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남편이 ‘우승 팀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절대 의심 하지 마라’고 응원했다. 오늘 경기(3차전)는 남편이 더 긴장했을 것이다. 남자인 척 하지만 지금쯤 울고 있을 것이다. 경기가 끝나면 청소를 해놓는 등 징크스도 만들더라. 남편에게 항상 고맙다”고 웃었다.

 

다사다난 했던 여자프로농구 일정이 모두 끝나자 본격적인 봄날이 찾아왔다. 플레이오프 시리즈가 시작될 때만 해도 꽃샘추위가 찾아와 눈까지 내렸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따뜻한 날이 찾아왔다. 김정은의 농구 커리어도 그랬다. 여자농구에선 보기 드물었던 원 핸드 슛을 던지던 여고 유망주였던 김정은은 원 맨 팀의 외로운 에이스를 거쳐 아픈 날을 극복하고 챔피언이 되었다.

 

이러한 드라마틱하고 절실한 과정이 있었기에 더 기쁘고 감격스럽다는 김정은의 커리어에 봄날이 찾아온 것이다. MVP 선정을 기념해 코칭스태프 선물을 장만하고, 종일 자신을 응원해준 분들을 위해 인사를 다니기에 바쁘다는 김정은은 곧 바쁜 일정이 마무리되는 대로 새 시즌을 대비한 치료(무릎, 어깨)에 도입한다. 꿈을 이루었지만 여전히 승리와 우승에 목마르다는 김정은. 2018-2019시즌, WKBL 사상 첫 7년 연속 통합우승에 도전하는 우리은행의 든든한 기수 역할을 계속 해나갈 수 있길 기대한다.

 

프로필 | 1987년 9월 7일생, 180cm, 포워드, 온양여고, 2006년 데뷔

 

#사진_유용우, 신승규 기자, WKBL 제공
#본 기사는 점프볼 2018년 4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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