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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규의 시원한 籠談] KBL의 레전드, 주희정을 만났습니다.
조원규
기사작성일 : 2017-11-10 01:14

[점프볼=조원규 칼럼니스트] 2017년 10월 29일. 한 선수로 인해 이 날은 한국농구의 역사가 됐습니다. 국내 최초로 정규리그 1000경기 출장을 기록한 주희정입니다. 주희정이 KBL에서 활약한 20년 동안, 이 선수를 코트에서 볼 수 없었던 경기는 15경기에 불과합니다. 마지막 5년의 출장시간은 평균 20분을 넘지 못했지만, 통산 평균 출장시간은 30분을 넘습니다. 10월 29일은 이 선수의 1,029경기 출장을 기념하기 위해 선택된 날입니다.

 

1,029경기 출장과 5,381개의 어시스트 그리고 1,505개의 스틸은 KBL의 경기 수가 NBA처럼 늘어나지 않는 한 누구도 추월하기 어렵다는 평가입니다. 통산 8개의 트리플더블 또한 지금의 외국인선수 제도에서는 추월이 쉽지 않습니다. 성실함과 꾸준함, 그리고 끊임없는 자기 관리와 노력으로 한국농구의 역사를 만든 주희정 선수를 연남동에서 만났습니다.

 

△ 은퇴하고 6개월이 지났는데 어떻게 지내셨어요?
필리핀에 3개월 동안 연수를 다녀왔습니다. 12월에 유럽으로 단기 연수를 떠날 계획인데, 그 전까지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해요. 그동안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적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추억을 쌓으려고 합니다.

 

△ 갑작스러운 은퇴였어요. 은퇴 후 준비를 못했을 텐데 바쁘게 지내네요.
처음에는 멍했어요. 앞이 안 보이고, 나한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사실 계획은 했었어요. 1년만 더 뛰고 은퇴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아이들이 그것을 원했고요. 플레잉코치로 뛰는 것에 대한 제안도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은퇴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플레잉코치도 유니폼을 입잖아요. 그러면 또 스트레스를 받겠죠. 승부욕이 강해서 팀이 지거나 플레이가 잘 안된 날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아내도 그동안 수고했다고, 현명한 결정을 했다고 응원해줍니다.

 

△ 야구의 이승엽은 은퇴 투어를 했어요. 그런 점에서 아쉬움은 없었어요?
제가 NBA에 진출한 것도 아니고. (웃음)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충분히 전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의미 있는 날에 팬들과 인사할 기회를 준 구단에 감사합니다. 이상민 감독님과는 다르게 (웃음) 저는 할머니 할아버지 팬들이 많았어요. 필리핀에 있을 때, 항상 응원해주시던 할머니 팬이 아침마당에 출연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서태지씨, 박상철씨 팬이 나오셨는데 그 분도 주희정 팬으로 출연하셨다고…. 그 분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지난 7월 31일 방송된 KBS1 교양프로그램 '아침마당'의 코너 '월요토크쇼 베테랑'에는, 고령에도 취미에 빠져 새로운 인생의 즐거움을 찾은 7인의 게스트가 출연했습니다. 주희정의 팬인 김예슬씨도 출연해서 "제 눈에는 주희정만 보인다"며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고 하네요.

 

은퇴식에서 주희정은 “농구는 신장이 아니라 심장으로 한다고 하는데, 나는 팬들의 응원으로 심장이 뛰었다”고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할머니, 할아버지 팬은 특별하다고 합니다. 이미 많이 알려졌지만, 주희정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프로에 일찍 진출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주희정의 유일한 가족은 할머니였습니다.

 


■ 농구로 대성하기 힘들다

 

△ 어린 시절부터 촉망받는 유망주는 아니었다는 인터뷰를 봤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주희정은 3점슛을 던져도 림에 맞지 않을 정도로 부실했습니다. 당시 선생님들이 “재는 가능성이 없다” “농구로 대성하기 힘들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죠. 그래서 저를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 할머니가 많은 힘이 됐나요?
저를 응원하는 유일한 가족이니까요. 사실 할머니는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어요. 옆집에 유명한 권투선수가 살았는데, 아내가 거액을 들고 가출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운동선수는 무식하고, 특히 여자를 잘못만나면 힘들다’는 일종의 편견이 있었습니다. 또 힘도 들고, 돈도 들고… 공부할 머리는 없으니까, 기술을 배우길 원하셨죠.

 

△ 그런데 농구로 KBL의 역사를 만들었어요.
집안 형편이 어려웠고, 어리지만 가장으로서 집안을 일으켜야한다는 책임감이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과 안 놀고 농구공과 놀았어요. 그리고 농구는 돈이 없어도 할 수 있어요. 공만 있으면 되니까. 해보는 데까지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젊었고…. 안되면 다른 일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했죠.

 

■ 최명룡, 신기성

 

△ 대학을 중퇴하고 빨리 프로에 갔어요. 아쉬움은 없었나요?
아쉬움은 없었어요. 빨리 돈을 벌어야 했으니까… 솔직히 저는 당시 학교보다 돈을 버는 것이 더 중요했어요.

 

△ 드래프트를 거치지 않았죠?
수련선수로 입단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산업은행과 연습경기를 했는데, 최명룡 감독님이 저를 좋게 봐주셨어요. 대학을 중퇴한 저를 나래 수련선수로 받아주셨죠. 제게는 새로운 농구인생을 만들어준 은인입니다. 지금도 자주 연락드리고,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더 익숙합니다.
※ 최명룡 감독은 주희정이 고등학교 3학년 때 산업은행 감독, 나래에 입단할 때 나래 감독이었습니다.

 


△ 수련선수로 입단했는데 그해 신인상을 받았어요.
(이)인규 형이 주전가드였는데 시즌을 앞두고 발목을 다치셨어요. 그래서 첫 경기부터 제가 투입됐습니다. 첫 경기를 해보니 해볼만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내 스피드면 통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이)상민 형이 저보다 기록이 좋았는데 자격이 안됐고, 운도 좋았습니다.
※ 주희정은 데뷔 시즌에 전 경기를 출장했고, 평균 36분 15초를 뛰며 12.73득점 4.2어시스트 2.9스틸을 기록하며 스틸상과 수비5걸상을 수상했습니다.

 

△ 그런데 신인상을 받은 선수가 트레이드를 당했어요. 고려대에서 밀렸던 선배 신기성 선수에게 또 밀렸다는 얘기도 있었고, 악연인가요?
악연은 아니었어요. 악연은 아니었고… 제가 못했던 거였죠. 고려대에서도 임정명 코치님, 박한 감독님이 기회를 안주신 것은 아니었어요. 제가 기회를 못 잡았죠. 프로에서 기성이 형을 만나면 이기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는데, 기성이 형만 이기고 싶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웃음)

 

△ 트레이드로 상처를 받지는 않았어요?
기성이형 때문은 아니었어요. 허재 감독님이 오셨고, 정인교 감독님은 기아로 가셨고… 팀을 재편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구단에서는 이슈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고. 저한테는 나쁘지 않았어요. 최명룡 감독님이 결정을 하셨는데…. 서울이라는 더 큰 물에서 놀 수 있었고, 잘되려고 하니까 그런 고통도 따랐던 것 같아요. 잘되려면 고통이 있어야 하잖아요.

 

 

1997-1998 시즌 서울 삼성의 성적은 10팀 중 9위. 가장 큰 문제는 게임리더가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주희정이 합류한 1998-1999 시즌에 삼성의 성적은 4위로 올랐고, 2000-2001 시즌에는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를 모두 우승하며 명실상부 최강팀에 올랐습니다. 주희정은 플레이오프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하며 리그 최고 가드의 반열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이후 다시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는 못했고, 2004-2005 시즌을 끝으로 주희정은 KT&G(현 KGC)로 이적합니다. 우승을 위해 서장훈을 영입했던 구단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삼성은 다음 시즌을 서장훈의 팀으로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원하던 우승 트로피를 가져 왔습니다.

 


■ 가드는 슬럼프가 없어야 한다

 

△ 서장훈 선수와 공존에 실패하면서 안양 KT&G로 이적했어요.
장훈이 형을 만났을 때는 나만 생각했어요. 장훈이 형이 다른 팀에서 삼성에 왔기 때문에, 장훈이 형이 나한테 맞춰야지 내가 장훈이 형한테 맞출 수는 없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가드는 다 맞춰야 해요. 제가 장훈이 형을 떠나고 그걸 알게 됐어요. 장훈이 형과 안 맞지는 않았는데 저도 고집이 있다 보니까 맞추기 싫었던 거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니까 그 때 내가 장훈이 형한테 맞췄으면 한 단계 더 빨리 성장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선수로서.

 

△ 그 영향인지 세트오펜스에 약하다는 평가가 있었어요. 이상민, 김승현 같은 당대 최고의 가드들과 비교해서 낮게 평가되는 부분도 있고요. 서운하지 않았어요?
그 때는 기분이 안 좋았죠. 저평가되는 것도 기분이 안 좋았고. 제가 그렇게 화려한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까 그런 평가를 받지 않았나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또 그 평가가 맞는 것 같기도 해요. 당시에 제가 좋은 선수도 아니었고, 화려하지 않은데 반쪽짜리 선수였으니까요. 그래서 그런 평가에 조금 화도 나고 자존심도 상했지만, 또 돌이켜보면 맞는 말이었어요. 제가 제자리걸음만 계속 했던 것 같아요.

 

△ 주희정을 상징하는 키워드가 성실과 노력인데 제자리걸음을 했어요? 
발전을 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어요. 이를테면 장훈이 형도 제가 빨리 파악하고 스타일을 더 맞췄어야 했는데 내 스타일을 너무 고집했어요. 제자리걸음만 한 거죠. 그래서 변화를 고민했습니다. 고민해서 찾은 것이 성실하게 해야겠다. 꾸준히 해야겠다. 화려하지 않지만 턴오버를 줄이고, 팀에 공헌도가 높은 가드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계기가 있었나요?
제게 포인트가드로서의 역할을 가장 잘 설명해주신 분은 김동광 감독님입니다. 그 분이 강조하신 것이 “포인트가드는 슬럼프가 없어야 한다.”에요. 득점이 없어도, 어시스트가 없어도 괜찮다고 하셨어요. 중요한 것은 경기 40분 내내, 시즌 내내 일정한 경기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가드가 무너지면 나머지 선수들이 함께 무너진다고 하셨죠. 그 말씀이 그 때 가슴에 와 닿았어요. 그리고 이상범 감독님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선수를 믿어주시는 분이에요. 선수들도 신뢰할 수 있는 분이고요. 그 분의 신뢰가 있어서 다시 뛸 수 있었습니다.

 

 

주희정은 KT&G에서 보낸 4시즌 동안 정규리그 216경기 중 214경기에 출전했고, 출전시간은 평균 37분을 넘었습니다. 베스트5 3회에 플레이오프 탈락 팀 선수로는 최초로 정규리그 최우수선수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팀을 우승으로 이끌지는 못하고 다시 서울 SK로 이적합니다. SK로 이적 후 출전시간은 계속 줄었고, SK에서의 마지막 시즌(2014-2015 시즌)은 주희정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평균 11분 44초만 코트에 머물렀습니다.

 


■ 벤치에서의 시간

 

△ 데뷔해서 연속 15년을 평균 30분 이상 출전했어요. 그러다 SK에서 출전시간이 많이 줄었는데 힘들지 않았어요?
SK에 있을 때는 벤치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죠. (웃음) 신인이었으면 그 시간이 힘들었을 수도 있었는데, 저한테는 오히려 좋은 공부의 시간이 됐습니다. 코트에서 직접 뛸 때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많이 보였어요. ‘지금 내가 나가면 팀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계속 생각했습니다.

 

△ SK에서 삼성으로 이적 후 경기력이 좋아졌다는 평가가 많은데, 혹시 벤치에서의 경험이 영향이 있었나요?
저는 그랬다고 생각해요. 팀이 나에게 원하는 것, 우리 선수들의 컨디션이나 심리 같은 것들을 많이 생각할 수 있었으니까요. 30대 후반에, 20대와 같은 에너지를 길게 유지하기는 힘들어요. 그런데 제 경험이 필요한, 중요한 순간이 있습니다. 득점이나 어시스트가 없어도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요. 외국선수를 다독이는 것일 수도 있고, 후배들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는 부분일 수도 있습니다. 상대와의 심리전도 있고요. 그런 점에서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 상대와의 심리전, 이를테면 어떤 것일까요?
원카운트나 투카운트 더블팀을 들어갈 때 우리 선수한테 “붙어”라고 소리를 치죠. 그러면 그 말을 듣고 상대 선수가 움찔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아요. 턴오버도 나오고. (웃음) 예를 들면, 그런 부분들입니다.

 

△ 그 때부터 지도자 수업을 하셨네요.
트레이너 코치 한 분이 농구는 참 힘든 운동이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다른 종목과 달리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심지어 마음까지 써야 하는 운동이라는 의미였죠. 선수 개개인의 성격부터, 오늘 누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다 체크해야 합니다. 그것들을 토대로 코트 안에서 빠르게 판단하고, 플레이로 옮겨야 해요. 그런데 벤치에 있으면 그런 부분들이 더 잘 보여요. 그런 내용들을 일지에 정리하는 습관도 이 시기에 시작했습니다. 일종의 지도자 수업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웃음)

 

△ 필리핀에서 연수를 하고 왔는데, 왜 필리핀을 선택하셨어요?
필리핀에 3개월 있었습니다. 개인기가 좋은 선수들이 많아서 그들이 어떻게 훈련하는지 보고 싶었고, 필리핀은 숙소가 없는데 선수들을 어떻게 관리하는지도 보고 싶었어요. 짧은 시간이지만 보고 싶은 것을 봤고… 지는 것에 대한 공부도 많이 했어요. 11경기를 하는데 9경기를 졌어요. 4~5 경기는 이길 수도 있는 경기였는데, 저는 관여를 많이 못하니까 속으로만 생각했죠. 시즌 후반에는 필리핀 코치들이 물어봐서 전술에 대한 대화도 많이 했습니다.

 

△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웃음)
이런 상황에서 이 선수를 넣었으면 어땠을까. 여기서 맥을 끊거나 반전이 필요했는데 무슨 카드가 있었을까. 이런 생각들입니다. 우리 팀은 공격패턴을 19개 준비했는데, 주로 사용하는 것은 3개였어요. 패턴이 많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고, 응용이 필요한데 필리핀 가드들이 개인기가 좋은 반면 다양하게 응용하는 부분은 부족해요.

 

△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겠어요?
예를 들면, 문태영이 슛을 던지는 A라는 패턴을 사용했어요. 다음 공격에서도 같은 패턴을 사용하면 상대는 문태영을 의식하잖아요. 그럴 때 라틀리프나 임동섭의 득점을 봐주는 거죠. 스포티비에서 NBA 해설을 하는데, 패턴이 딱 5개에요. 그런데 파생되는 옵션들이 많습니다. 유도훈 감독님도 특정 팀을 만나면 패턴 3개로만 경기할 때가 있습니다. 3개 패턴이지만 파생되는 옵션들이 많으니까 그것만 지시하는 거죠. 중요한 것은 응용이고, 응용도 경기를 반복하면 선수들이 익숙해집니다.

 


■ 영화 같은 감동 스토리를 꿈꾸다

 

△ 자연스럽게 진로 얘기로 넘어가보죠. 인터뷰에서 지도자가 되고 싶다고 했어요.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나요?
이상범 감독님의 선수들과 신뢰, 이상민 감독님의 형님 같은 리더십, 유도훈 감독님의 카리스마와 선수들을 장악하는 능력, 유재학 감독님의 빠른 두뇌회전, 김동광 감독님의 기본에 충실한 농구를 모두 배우고 싶어요. 그러면 어느 팀을 만나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

 

△ 욕심이 많네요. (웃음) 마이크 디앤토니 감독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빠르고 공격적인 농구를 구상하시나요?
공격적인 팀이지만 꼭 빠른 팀은 아닙니다. 많이 움직이면서, 패턴 하나에도 다양한 공격옵션을 만드는 팀이에요. 속공에서는 하나의 패스, 두 개의 패스로 공격이 끝나잖아요. 세트오펜스에서도 그렇게 득점 기회를 만드는 팀이죠. 슛이 안 들어가도 보는 눈이 즐겁잖아요. 그런데 코트에서 경기를 하는 것은 선수들이에요. 그래서 선수 구성과 컨디션에 따라 빠르게 변화할 수 있는 센스 있는 감독도 되고 싶어요.

 

△ 그 팀에 맞는 선수들을 지금 KBL에서 꼽아본다면?
1번은 양동근입니다. 경기를 풀어가는 능력이 가장 뛰어나요. 2번은 이정현입니다. 파울 유도를 잘 하고, 수비를 다룰 줄 아는 선수에요. 3번은 문태종, 인사이드 조합은 함지훈과 김주성입니다. 모두 농구를 알고 하는 선수들이에요. 문태종은 믿고 맡길 수 있는 슈터고, 함지훈과 김주성은 경기를 조립하는 능력이 뛰어난 선수들입니다.

 

△ 주희정이 생각하는,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일까요?
신뢰입니다. 벤치에 12명의 선수가 있어요. 어느 선수는 30분을 뛰고, 어는 선수는 5분을 뜁니다. 아예 경기에 나가지 못하는 선수도 있어요. 감독은 그 선수들 모두에게 신뢰를 줘야 합니다. 선수의 성격이나 작은 습관까지 파악해야 하고, 대화를 많이 해야 합니다. 그래야 선수들이 감독을 믿고 열정을 다 할 수 있어요. 가식이 아닌 진심으로 모두가 열정을 다하는 팀이 되는 거죠. 그런 팀은 영화 같은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 예민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어요. 그 점이 지도자가 되는데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까요?
그 점이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죠. 그런데 두렵거나 그렇지는 않아요. 대학을 안 나오면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없나요?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포스트에 공을 투입하는 것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어요. 상황에 따라 다른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선수들에게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코칭의 이론 같은 것을 경험으로만 채우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공부의 필요성은 절실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학교 복학도 알아봤는데 가능하다고 들었어요.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한 이론적인 공부도 병행해야죠.

 

■ 얼리 엔트리를 묻다

 

주희정은 선수로서 최고의 기록을 남겼고, 이제 최고의 지도자가 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농구가 좋아서 농구를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급식으로 주는 빵과 우유를 먹기 위해 농구를 시작했고, 할머니의 약값을 위해 대학생활을 중단했습니다. 스무 살의 어린 나이에 프로에 도전했고, 당분간 누구도 넘보기 힘든 기록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 프로농구의 가장 큰 이슈 중의 하나는 얼리 엔트리입니다. 고졸 루키 송교창이 작년에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보냈고, 올해는 국가대표 포워드 양홍석과 대학 정상급 가드 유현준이 얼리 엔트리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두 선수는 드래프트 2순위와 3순위로 지명되면서 다시 주목을 받았습니다. 주희정은 얼리 엔트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습니다.

 

△ 얼리 엔트리 1호에요. (웃음) 대학을 포기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어요?
저도 얼리 엔트리인가요? 저는 수련선수라….
후회나 아쉬움은 없어요. 말씀드렸듯이 저는 학교가 목적이 아니었어요. 돈을 버는 것이 가장 중요했죠. 그 때 수능을 보고 고대에 진학했는데, 오히려 수능에 떨어지는 것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떨어지면 산업은행에 직원으로 입단하기로 했었거든요.

 

△ 최근 얼리 엔트리를 선택하는 유망주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얼리 엔트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한국농구의 발전을 위한 첫 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인에 비해 뒤지지 않는 어린 선수들이 있습니다. 빨리 나올 수 있으면, 나와서 큰 경험을 쌓는 것이 나쁘지 않아요. 우려가 되는 점은, 대학교에서 4년 동안 학업도 운동도 열심히 했는데 프로에 못 오는 선수들이 있습니다. 그런 선수들의 불만도 있을 것 같아요. 12명의 엔트리에서 제외한 선수들은 자기 기량을 보여줄 기회가 많이 없잖아요. 그런 점은 걱정이 됩니다.

 

△ 필리핀은 어떤가요? 얼리 엔트리가 활발한가요?
필리핀은 경기 시간이 48분이고, 엔트리도 16명입니다., 2부 리그는 6팀이 있는데 인기가 많아요. 한국보다 보여줄 기회가 많습니다. 물론 그 곳에도 경쟁이 있고, 도태되는 선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프로에서 롱런하기 어려운 선수들은 빨리 다른 길을 찾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도 합니다. 어렵네요. (웃음)

 

△ 편한 애기를 하죠. (웃음) 송교창 선수와 경기를 많이 했어요. 대졸 선수들과 비교해 어땠나요?
운동능력이 좋아요. 키가 큰데 운동능력이 좋은데, 순간스피드나 파워는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경험이 쌓이면 또래 동기들보다 높은 위치에 가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아직 새내기라는 느낌, 아직은 농구를 모르고 한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대졸 선수와 비교하면 어떤가요?)
기본기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화려하게 드리블을 치고 나가는 포지션이 아니기 때문에 못 보여준 것일 수도 있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온 선수들에 비해 기본기가 부족하고 운동능력으로 커버하는 것 같아요. 너무 단점만 얘기하나? (웃음) 사실 고졸 2년차 선수가 우승권 팀에서 주전으로 뛰는 것만으로도 대단하죠. 대졸 선수들 중에도 2년차에 주전으로 뛰는 선수는 많지 않아요.

 

△ 작년 한양대와 연습경기 이후에 유현준 선수에 대해 극찬을 했어요. 이 선수의 가능성은 어떻게 보시나요?
가드가 갖춰야 할 기본을 잘 갖춘 선수에요. 양 손을 다 사용하고 시야가 열려 있어요. 여유도 있습니다. 그런데 욕심이 많아요. 연습경기를 했을 때, 패스가 좋은 선수고 어시스트를 잘 하는데 본인이 득점을 하려는 욕심이 많았어요. 요즘 트렌드에는 맞을 수도 있겠죠? (웃음) 그런데 사실 이런 부분은 누가 얘기해줘도 몰라요. 내가 해결해야 할 때와 패스를 해야 할 때는 경험을 통해 알게 되요.

 

△ 양홍석 선수는 어떤가요?
사실 이 선수 경기는 못 봤어요. 잘한다고, 프로에 와도 손색이 없다고 들었는데 봐야죠. 제가. 봐야 아는데…. 팀이 최하위다 보니까 기회를 많이 받을 것 같아요. 그런데 본인에게 맞는 농구만 하면 힘들어질 수 있어요. 김영환이나 박상오 같은 선배들의 노하우를 많이 빼먹어야 합니다.
※ 주희정 선수와 인터뷰를 11월 6일에 했습니다. 양홍석 선수의 프로 데뷔경기 전이었고, 유현준 선수와 달리 양홍석 선수와는 연습경기 기회가 없었습니다. 


■ 주희정에게 농구란?

 

서울의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는 연남동. 그 곳에는 좋은 사람들과 마주하기 좋은, 아날로그적 감성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연남동은 주희정과 많이 닮았습니다. 그에게는 가족의 생계가 삶의 전부였던 아버지의 책임감이 있고, 처음 만나는 필자에게도 마음을 여는 넉넉함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꿈, 목표를 주저 없이 말하는 당당함도 있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농구. 이제 농구는 그에게 무엇일까요? 인터뷰를 하면서, 이제는 돈을 벌기 위한 수단만은 아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농구를 얘기하는 주희정의 눈에는, 아주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의 기쁨과 열정이 있었습니다. 29년의 긴 선수 생활을 마친 지금. 주희정에게 농구가 어떤 의미인지 물었습니다.

 

△ 농구를 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었어요?
그렇지는 않았어요. 다만 미안한 것은 있죠. 특히 가족들에게 미안해요. 함께 있는 시간, 함께 만든 추억이 너무 적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하루를 굉장히 길게 살아요. 선수 시절보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납니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밤에는 공부를 하고 있어요.

 

△ 유럽으로 연수를 간다고 했는데, 공부는 그것과 관계가 있나요?
유럽은 유망주 육성 시스템이 잘 갖춰졌다고 들었어요. 짧게 한 달만 다녀오는 일정이라 최대한 많이 배우려고 합니다. 그래서 준비를 많이 해야 되요. 대부분의 선수가 그렇겠지만, 저 역시 마지막 목표는 감독이 되는 것입니다. 준비해야죠.

 

△ 우문 하나만 할게요. 농구와 가족 중에 하나만 선택한다면?
농구가 가족이에요. 떨어질 수 없는 관계. 같이 있어도 애 닳고 더 같이 있고 싶고, 죽을 때까지 저를 따라다닐 것 같은…. 한 때는 삶이라고 대답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들 지우의 영향도 있어요. 지우가 농구를 하겠다고 합니다. 저는 반대했는데 끝까지 한다고 하네요. 그래서 허락했어요. 대신 NBA에 가야 한다고 조건을 달았죠. (웃음)

 

△ NBA 진출 약속을 받았어요?
받았는데…. 8살 아이가 NBA가 뭔지 알까요? (웃음) 그래도 더 큰 꿈을 꿀 수 있으니까. 운동을 한다면 축구를 시키고 싶었어요. 축구는 해외진출이 가능하잖아요. 단순히 운동량만 보면 저도 NBA 진출하고 남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농구는 쉽지가 않잖아요. 그래도, 이왕이면 큰 무대에서 뛰었으면 좋겠어요.

 


"니들은 내일만 보고 살지? 내일만 보고 사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한데 죽는다. 난 오늘만 산다.“

 

영화 ‘아저씨’에 나온 원빈의 대사입니다. 주희정은 오늘만 보고 살고 있었습니다. 가족들과 더 많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최종 목표인 지도자의 꿈을 향해 하루를 길게 살고 있었습니다. 주희정의 긴 하루가 쌓여 빛나는 내일이 되는 날, 우리는 레전드 주희정 선수에 이어 레전드 주희정 감독을 만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진=점프볼 DB(문복주, 유용우 기자) ,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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