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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인생 2막' 양지희, "우리은행은 내게 특별했던 곳"
이원희(mellorbiscan@naver.com)
기사작성일 : 2017-11-06 12:53
[점프볼=이원희 기자] 지난 4월 전격 은퇴를 선언했던 양지희(33)는 아산 우리은행에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왔다. 끝날 것 같지 않던 꼴찌 생활을 이겨낸 뒤 2012-2013시즌부터 통합 5연패 영광을 누렸다. 2015-2016시즌에는 생애 처음으로 정규리그 MVP를 차지했다. 그렇게 울고 웃고 했던 코트를 떠난 지 벌써 반년이 흘렀다. 새로운 인생에 도전하고 있는 양지희, 그에게 우리은행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을까.

# 본 인터뷰 기사는 10월 13일에 이루어졌으며, 점프볼 매거진 11월호에 게재된 내용을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은퇴 이유 : 무릎 부상

기자에게도 양지희는 특별한 선수였다. 몇 년간 여자프로농구와 대표팀 현장을 누비며 가장 자주 인터뷰를 가진 선수 중 하나였다. 유쾌하고 털털한 성격 덕분에 취재진을 보면 항상 반갑게 맞아줬다. 덕분에 편하게 서로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었고, 농구 외적으로도 많은 얘기를 주고받았다. 최근에는 결혼 생활과 관련해 여러 팁을 받고 있다. 미혼인 기자에게 일찍 결혼해야 좋을 게 많다고 했다. 기자가 생각하는 양지희는 ‘해야 할 것은 무조건 해내는 선수’였다. 고된 훈련이 잡아당겼을 때도, 무릎 부상이 그를 가로막았을 때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WKBL 개막을 앞둔 지난 10월 13일, 양지희를 만났다. 변함이 없었다. 유쾌하고 재밌고, 다른 한편으로는 또 진지했다. 인터뷰 도중 ‘선수 때는 할 수 없었던 말’이라며 기자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날 인터뷰는 장위동에 있는 우리은행 숙소 근처에서 이루어졌다. 마침 양지희가 우리은행 선수단을 깜짝 방문하기로 했던 날. 은퇴하고서도 주위를 맴도는 것처럼, 양지희에게 우리은행은 특별한 곳이다.

양지희는 2016-2017시즌을 마치고 코트를 떠났다. 우리은행은 33승 2패의 경이로운 승률로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챔피언결정전에서도 삼성생명 블루밍스를 3전 전승으로 가볍게 눌렀다. 우리은행 선수들이 통합 5연패의 기쁨을 누렸던 날. 동시에 기자는 양지희에게서 은퇴 생각을 들어야 했다. 당시 양지희는 “무릎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은퇴할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양지희는 2016-2017시즌 무릎 부상으로 고생했다. 1라운드 전 경기에 결장하는 등 리그 28경기 출전 평균 5.75점 4.96리바운드에 그쳤다. 악착같은 성격 덕분에 시즌 막판 컨디션을 끌어올리는데 성공, 챔피언결정전까지 버티며 우승에 일조했지만 축포가 울리자 결심의 시간이 다가왔다는 것도 알게 됐다. 양지희는 “한 경기를 뛰고 나면 무릎이 엄청 부어 있었다. 하지만 주장을 맡았기 때문에 팀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돼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책임감 하나로 마지막 시즌을 소화한 것 같다. 아플수록 한 발 더 뛰려고 했고 선수들에게 파이팅을 외쳤다. 사실 한 시즌을 더 뛰고 은퇴하고 싶었다. 하지만 몸이 버텨주지 못했다. 지금은 은퇴 결정에 만족한다. 하루하루 재밌게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지내나요?

양지희는 요즘 어학연수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양지희는 오는 11월 1일 우리은행 위비와 KB스타즈가 맞붙는 홈경기에 은퇴식을 가질 예정이다. 이후 곧바로 미국 워싱턴에서 1년간 지내며 영어를 공부한다. 양지희는 “항상 영어공부를 하고 싶었다. 어렸을 때는 영어 공부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선수 생활을 하다 보니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선수들을 만나면서 영어를 하는 게 재밌었다. 선수 시절 독학을 하거나 여행을 떠나면서 영어를 배우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운동 때문에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은퇴 이후 어학연수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고 설명했다. 갑작스런 결정은 아니었다.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었다. 양지희는 “은퇴하자마자 정신이 없었다. 무릎 수술부터 받았고 꾸준히 재활 훈련에 집중했다. 남는 시간에는 무조건 영어 공부만 했다. 제가 사는 곳은 현재 구미인데, 병원과 영어 학원은 대구에 있었다. 매일 몇 시간씩 운전하며 영어를 배우려 다녔지만, 항상 흥미롭고 재밌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이 특별했던 이유 :
임영희, 박혜진, 전주원 그리고 위성우

양지희는 선수 시절 흘렸던 땀이 대단히 만족스럽다고 했다. 기록부터 뛰어났다. 마지막 시즌을 제외하면 우리은행에서 두 자릿수에 가까운 평균 득점, 평균 5여개에 달하는 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정규리그 MVP가 됐던 2015-2016시즌에는 평균 10.3점 6.1리바운드 2.7어시스트를 찍었다. 대표팀에서도 많은 공을 세웠다. 2013년 FIBA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고,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해 프랑스 낭트에서 열린 리우올림픽 최종예선에서는 각국의 센터들을 상대로 투지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한국은 6위를 기록. 아쉽게 올림픽 티켓을 놓쳤지만 기대 이상의 선전으로 호평을 받았다. 세대교체를 진행 중인 대표팀에 희소식이었다. 양지희가 가교역할을 해낸 것이다. 

그렇다면 양지희는 어떻게 농구를 하게 됐을까. 작은 인형 하나가 양지희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양지희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농구부 코치님이 저에게 농구를 권유하셨다. 그때 농구를 하겠다는 욕심은 없었다. 농구부 코치님은 끊임없이 농구를 하자고 말씀하셨고, 저는 인형을 사주면 하겠다고 약속드렸다. 그런데 다음 날 곧바로 비싼 인형을 사주셨다. 그렇게 농구를 시작했다. 사실 집에는 농구를 하겠다고 쉽게 말하지 못했다. 이미 6개월 전에 하고 있었던 핸드볼을 그만뒀기 때문이다. 그때 힘들다고 핸드볼 공을 놓았는데, 새롭게 농구를 시작하겠다고 하니 혼이 날까봐 무서웠다. 집에는 ‘농구부 코치님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했다’고 말하며 설득했다. 제가 정신력이 강한 편은 아니다. 노는 걸 좋아하고 갇혀 있는 걸 버텨내는 성격도 아니다. 그래서 청소년대표팀 동료들은 프로에 가면 제가 가장 먼저 그만둘 거라고도 했다. 하지만 지금 보면 그때의 선수들보다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했다. 인생은 모르는 것 같다”고 웃었다.   

양지희의 선수 생활을 빛나게 한 곳은 단연 우리은행이었다. 양지희는 우리은행에서 잊지 못할 사람을 여럿 만났다. 위성우 감독의 지도 덕분에 리그 최고의 센터로 성장했고, 또한 임영희, 박혜진 등 리그 톱 레벨 선수들과 함께 코트를 누볐다. 양지희는 지난 2003년 1군 데뷔 이후 줄곧 신세계(현 KEB하나은행)에서 뛰었지만, 2010-2011시즌 우리은행으로 팀을 옮겼다. 당시 우리은행은 패배가 익숙한 리그 최약체였다. 양지희는 “우리은행에서 잘하는 모습을 언젠간 신세계에 보여주겠다”는 마음으로 독하게 훈련했다고 한다. 그러던 2012-2013시즌, 위성우 감독이 우리은행에 부임하면서 양지희의 인생도 바뀌게 된다. 그야말로 우승 복이 터졌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생에서 잊지 못할 고된 훈련도 함께 따랐다.

양지희는 “고된 훈련 때문에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그래서 첫 우승 때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 정도 훈련했으면 우승할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우승도 느낌이 비슷했다. 아마 기뻐할 틈도 없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세 번째 우승부터 ‘내가 해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은행에 있으면서 나 자신과 싸우는 방법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양지희가 힘들 때마다 중심을 잡아준 선수는 맏언니 임영희였다. 양지희는 “(임)영희 언니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프로 생활을 하면서 몇 번이나 뛰쳐나가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영희 언니가 위로를 해줬다. 특히 무릎 부상으로 힘들어하는 나를 토닥여줬다. 시즌 전에 아프면 시즌 중반에 나아질 거라 했고, 시즌 중반에 아프면 다음 시즌 잘하면 된다고 했다. ‘어떤 현실에 처하더라도 너는 양지희라는 사실이 바뀌지 않는다’고 했다. 그 한 마디에 자신감이 생겼다. 확실히 영희 언니는 선수들의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것 같다”고 고마워했다.

반면 양지희는 박혜진에게 큰 힘이 됐다. 박혜진은 리그 최고의 선수 중 하나다. 언제나 훈련을 게을리 하는 법이 없다. 자신에게 엄격한 선수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부담감이 크다. 그런 박혜진을 볼 때면 양지희는 잠깐 쉬어도 된다며 어깨를 토닥였다. 양지희는 “(박)혜진이를 보면 안쓰럽기도 했다. 무조건 훈련해야 했고 노력해야 했다. 항상 나보다 10배가 넘는 훈련을 버텨왔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너무 힘들게 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물론 내가 배울 점도 많았다. 리그 정상인 선수가 저런 열정을 유지하는 걸 보면서 나도 저렇게 훈련한 적이 있었을까 하고 후회했고, 내가 혜진이처럼 운동했으면 더 좋은 선수가 됐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일이 너무 풀리지 않을 때는 잠시 내려놓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조언하고 싶다. 부담을 가지면 오히려 더 안 될 때가 있다.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마음먹으면 저절로 일이 잘 풀릴 때가 있다”며 후배를 챙겼다.

양지희를 리그 최고의 선수로 올려놓은 조력자는 위성우 감독과 전주원 코치다. 양지희는 먼저 전주원 코치에 대해 “전 코치님은 여자농구의 레전드였다. 선수 시절에는 같이 뛰는 것만으로 영광이었다. 상대로 만나는 날에는 얄밉게 잘하셨다. 그런 분이 코치님으로 오셔서 특별한 느낌이었다. 같이 훈련하다 보면 전 코치님의 실력이 여전하다는 걸 느낄 때가 많았다. 때로는 전 코치님이 미울 때도 있었다. 훈련을 설렁설렁하면 감독님께 그대로 얘기하셨다(웃음). 처음에는 감독님 편만 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전 코치님도 힘든 일을 하고 계신다고 깨달았다. 선수들을 하나하나 신경 쓰고 감독님을 옆에서 잘 보좌해야 했다. 저 역시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셨다. 감사하다”고 말했다.

위성우 감독에게도 같은 마음이었다. 양지희는 “위 감독님은 정말 고마우신 분이다. 정도 많아 저를 잘 챙겨주셨다. 위 감독님이 처음에 우리은행에 왔을 때는 선수들이 모두 겁을 먹었다. 매일 울상인 채로 훈련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알고 보니 나쁜 남자 스타일이셨다. 9번을 혼내다가도 마지막 1번을 잘해줘 선수들에게 감동을 주신다. 선수 생활이 힘들었지만 그런 재미로 훈련을 버텨온 것 같다. 덕분에 리그 정상급 센터로 올라갈 수 있었다”고 웃었다.  

코트 떠난 양지희, 이제는 남편 뿐

양지희는 은퇴 후 남편 김창훈(34)씨와 행복한 삶을 보내고 있다. 양지희에게 남편 김창훈씨는 고마운 사람이다. 선수 시절 자신을 밀어준 든든한 지원자였고, 어학연수를 떠난다고 해도 이해한다며 잘 다녀오라는 따뜻한 말을 건넸다. 양지희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 중 하나다. 남편은 성실한 사람이다. 투덜투덜 하지만 애교를 부릴 때도 많다. 무뚝뚝하면서도 성격이 재밌어 잘 지내고 있다. 사실 어학연수를 간다고 했을 때 남편이 반대를 많이 했다. 선수 시절에도 함께 하는 시간이 적었는데, 은퇴 후 어학연수를 떠난다고 했으니 섭섭할 만 했다. 나도 남편에게 미안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걱정하지 말고 어학연수를 다녀오라고 말했다. 20년 넘게 운동만 했으니 이제 하고 싶은 걸 할 때도 됐다고 했다. 나를 위해 갔다 오라고 했다. 그런 남편이 항상 고맙다”고 말했다.

연애 시절에는 답답한 부분도 있었다. 양지희는 “후배의 파티에 놀러 갔다가 처음 남편을 만났다. 당시 날씨가 엄청 추웠는데, 남편이 내가 호떡을 들고 있는 모습에 반했다고 했다(웃음). 나도 호감은 있었다. 그런데 연락처를 주고받은 뒤 한 달 넘게 연락이 오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내가 먼저 ‘내일 아침 일찍 훈련해야 한다. 모닝콜을 해줄 수 있느냐’라고 물었다. 그 이후로 친하게 지내면서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고 했다. 

양지희가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에는 위성우 감독의 역할이 컸다. 양지희는 “한 번은 훈련이 너무 힘들어 남자친구였던 남편에게 빨리 결혼하자고 했다. 남편은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했지만 더는 기다릴 수 없으니 결혼하자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편을 만난 게 내가 잘한 일 중 5위 안에 든다. 남편과 있으면 하루가 재밌다. 주말에는 함께 대청소하고, 분리수거도 같이한다. 회사를 쉬는 날이면 무조건 나와 함께 치과를 간다. 항상 잘 챙겨주는 남편이 고맙다”며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2세 계획에 대해 묻자 양지희는 “남편 키가 192cm다. 나도 키가 큰 편이라 미래의 아이도 키가 클 것 같다. 한 번은 자녀의 키를 예상해주는 프로그램을 해봤는데, 우리 아이의 키가 195cm가 나왔다. 운동을 하지 않기에는 키가 아깝다. 그래서 남편은 무조건 운동을 시키자고 했다. 아마 운동을 시켜야 할 것 같다”고 웃었다. 양지희를 쏙 빼닮은 농구 선수를 미래에 볼 수 있을 것 같다.

11월 1일 우리은행 홈코트에서의 은퇴식을 끝으로 ‘선수’ 양지희의 역할은 공식적으로 마무리 된다. ‘전설’과 ‘추억’을 뒤로 한 채 인생의 새로운 쿼터를 향해 나아가는 그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사진=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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