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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김기윤 어머니가 말하는 우리 아들, “비도 맞고, 바람도 맞으면서 성장했죠!”
강현지(kkang@jumpball.co.kr)
기사작성일 : 2017-10-04 23:40

[점프볼=강현지 기자] 인터뷰를 위해 어머니를 만나 뵐 수 있냐고 기자가 묻자, 김기윤은 웃으며 말했다. “저희 엄마요? 할 말 많으실 걸요?” 김기윤은 고교 시절 ‘제2의 김태술’로 주목받은 유망주였지만, 농구인생이 탄탄대로였던 것은 아니었다. 부상에 울고 고비도 많았다.

 

그런데 그로 인해 마음 아파했던 이는 김기윤 혼자만은 아니었다. 어머니 조화자(51) 씨도 아들 못지않게 가슴 졸인 날이 많았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김기윤의 그 말이 비로소 이해가 갔다. 어머니는 농구 유망주의 버라이어티 했던 성장기를 들려줬다.

 

# 본 기사는 점프볼 2017년 9월호에 게재된 내용을 일부 편집했습니다.

 

 

다방면으로 잘했던 인기쟁이
“어머니, 왜 기윤이 농구 시키려고 하세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어휴~ 선생님, 얼마나 가겠어요. 조금만 더 시켜보다가 다시 공부하겠죠.”

 

김기윤이 초등학교 2학년일 때였다. 김기윤은 얼굴도 잘 생기고 운동이면 운동, 공부면 공부, 다방면에서 솜씨를 발휘해 어딜 가든 주목받는 ‘인기남’이었다. 어느 날 그런 그에게 유니폼 한 벌이 생겼다. 형들로부터 물려받은 유니폼을 입었던 그 날, 바로 ‘농구선수’ 김기윤이 탄생한 날이었다. 그때를 회상하며 “유니폼이 원피스 같았어요”라며 웃은 조화자 씨. 그때만 해도 어머니는 아들이 얼마 가지 않아 ‘그만 둘게요’라고 말할 줄 알았다고 한다. 담임선생님께도 그리 전했다.

 

그런데 김기윤은 그 힘든 체력 훈련을 이겨냈다. 새벽 5시마다 짐을 챙겨 학교로 향했던 것이다. “급식도 안했던 때라 도시락을 싸서 다녔었어요. 겨울에는 어두컴컴했는데, 하루도 안 빠지더라고요. 안 하던 운동을 하다 보니 입술도 부르트곤 했는데, 그래도 운동을 그만 하겠다는 말을 안 하더라고요. 한 번 하려는 건 끝까지 하는 스타일이에요. 많이 노력하는 스타일이죠.”

 

김기윤의 ‘성실함’을 말하며 어머니는 마산동중 때까지 쓴 아들의 농구 일지를 보여줬다. “아마 서울로 올라가기 전까지 쓴 거 일 거예요”라며 학창시절 김기윤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어디서 들었는지 1.5리터짜리 콜라병을 들고 슛 자세를 취하더라고요. 병을 거꾸로 들고 스냅 연습을 한다면서요. 방 청소를 하면서 콜라병이 있길래 몇 번을 버렸는데, 한날은 연습해야 되는데 왜 자꾸 버리냐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연습하고, 밤 10시엔 반드시 잤어요. 키 커야 한다고요. 어릴 때부터 ‘자긴 아빠 닮아서 키가 안 클 것 같다고, 노력해야 할 것 같다’며 스트레칭도 꾸준히 하고, 탄산음료도 안 먹었어요. 독하다 싶을 정도로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이었죠.”

 

긴 방황
경남 지역에서 이름 석 자를 알린 그는 경복고에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서울로 상경한다. 유망주를 수도권으로 뺏긴다는 학교 입장과 아들이 더 큰물에서 농구를 배웠으면 하는 부모님의 의견이 충돌해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김기윤은 우여곡절 끝에 경복고에 입학한다.

 

“굴러 온 돌이 박힌 돌 빼고 올게. 너무 걱정마.” 아들은 이 한 마디와 함께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기윤이를 아빠와 버스에 태워 보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하지만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기윤이가 고1 때 농구를 그만두면 안 되겠냐고 하더라고요. ‘학교 다녀왔습니다’는 그 평범한 말이 너무 하고 싶었다면서 말이에요. 너무 어렸을 때 품에서 떼어 놓아서 그렇지 않나 싶어요. 더 클 수 있었을 때, 한 창 먹을 때 못 챙겨준 것 같아 미안했거든요. 항상 보면 짠하고, 지금은 지나간 일이 됐지만, 매일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냈죠.”

 

잠시 스쳐 지나가는 바람인 줄 알았지만, 조화자 씨와 김기윤에게는 태풍 같았던 시간이었다. “기윤이가 농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요? 별 짓을 다했죠(웃음). 당시 기윤이 누나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는데, ‘다른 수험생 집들은 발걸음 소리도 안 낸다더라’부터 시작해서 ‘같이 죽자’란 말까지 했었어요.”

 

어머니 마음인들 오죽했으랴. “결국 ‘다시 학교로 가겠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날 밤에 잠을 자는데, 아직도 기윤이의 그 한숨 소리가 귓가에 생생해요. 천장이 꺼지도록 ‘휴’ 한숨을 쉬는데, 둘 다 밤잠을 설쳤죠. 이 밤이 지나면 학교에 가야 하니 고민이 많았던 거죠. 그 한숨 소리가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한참을 방황하던 김기윤은 고1때 대만으로 전지훈련을 다녀오면서 마음을 다잡게 된다. 바로 가족들의 하얀 거짓말 덕분이다. 가족 여행이라고 속이고, 김기윤을 대만 전지훈련 비행기에 실려 보냈던 것이다.

 

“경기를 한 경기 못 뛰거나 출전 시간이 줄어들면 스트레스를 엄청 받아요. 감독님께 지적을 받으면 밤새 그 생각만 한다고 하더라고요.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김기윤’으로 이름을 날렸는데, 1학년 때 출전시간이 줄다 보니 의기소침해 진거죠. 당시 기사에도 ‘김기윤이 소풍 갔다, (선수로서) 끝났다’라는 말이 많았었어요.”

 

그가 재기한 건 2009년. 연맹회장기와 대통령기 우승을 주도하며 두 대회에서 어시스트상도 거머쥔다. 스포트라이트가 다시 김기윤을 향하기 시작했다. “다시 ‘김기윤’이란 이름을 알렸죠. 다 죽었는데, ‘제2의 김태술’, ‘김기윤이 돌아왔다’며 기사도 쏟아졌죠. 그때부터는 경기도 뛰면서 자신감을 찾을 것 같아요.”

 

 

이젠 태극마크!
김기윤의 농구 일지를 살펴보면 ‘연세대 가자’, ‘전국에 내 이름을 알리자’, ‘랭킹 1위가 되자’ 등 동기부여가 될 만한 문장들이 가득하다. 김기윤은 첫 번째 목표는 연세대 진학.

 

“김도완 선생님을 만나면서부터였어요. 선생님이 기윤이에게 연세대 이야기를 해주시고 하다 보니 자연스레 목표가 된 거죠. 어느 날 중학교 3학년 때인가 기윤이가 연세대 견학을 다녀왔다며 전화가 왔어요. 연세대 팻말이 있는 입구에서 손을 얹으며 ‘3년만 기다려라! 내가 올게’라고 하고 왔다면서요.”

 

그렇게 경복고를 거쳐 목표로 했던 연세대로 진학한 김기윤. 탄탄대로일 줄 알았지만, 또다시 장애물이 그가 가는 길을 방해했다.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고, 실력 좋은 후배들이 가세하며 코트보다는 벤치에 있는 시간이 늘어갔다. 머리에는 500원짜리 동전만 한 원형탈모가 생길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밤에 ‘카톡’ 소리만 들리면 마음이 내려앉는 것 같았어요. ‘얼리로 (드래프트에)나가고 싶다’, ‘농구를 그만둘까’, ‘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할까’하는 아들의 말에 억장이 무너졌죠. 고비를 넘기니까 또 다른 고비가 닥치더라고요. 고등학교 때 그만둔다고 했을 때, 말리지 말았어야 했나 싶더라고요.”

 

그 힘든 나날은 은희석 감독을 만나면서 마무리 됐다. 2014년 KBL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6순위로 안양 KGC인삼공사에 지명된 배경이다. 드래프트 무대에 선 김기윤은 결국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대학 때도 고생을 많이 했어요. 비도 맞고, 바람도 맞으면서 그러면서 성장했죠. 순탄하게 걸어왔으면 좋았겠지만, 그런 과정에서 기윤이도 오기, 독기가 생긴 것 같아요”라고 말한 조화자 씨. 당시 눈물의 드래프트 현장에서는 “이게 네가 가야 할 길이라면 즐겨라. 프로에 가서도 최선을 다하면 되지, 꼭 최고가 아니어도 된다. 인생을 즐기면서, 또 농구가 좋아서 하는 것이면 언젠가 정상에 설 수 있을 거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편하게 생각해라”라는 말로 아들을 다독였다.

 

그러면서 조화자 씨는 아들의 마지막 목표를 짚었다. “아들~! 이제 훈련일지에서 목표 하나 남았어~ 국가대표! 알지?”라고 말한 조화자 씨.

 

지난 시즌 허리 디스크 부상으로 아쉬움을 삼킨 김기윤은 지난 8월, 동아시아 챔피언스컵에서 건강하게 복귀했다. 8개월여 만에 코트에 선 터라 아직 완전치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제 그에게 필요한 건 시간뿐이라는 걸 보여줬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는 새 시즌을 준비하는 아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언제나 아들은 아빠와 엄마의 자랑이었고, 희망이었고, 기쁨이었어. 힘들었던 날보다는 웃는 날이, 아들 덕분에 남들한테 대접받은 날도 많았단다. 지금까지도 잘해왔지만, 앞으로는 다치지 말고, 자기 관리에 더 철저했으면 좋겠어. 너무 잘하려고만 하기보다 스스로 떳떳한 선수가 되었으면 하고. 자랑스러운 우리 아들, 언제나 아빠·엄마에게 행복만 주는 김기윤! 아주 많이 사랑한다♥”

 

EPILOGUE. 아들이 어머니에게
“별난 둘째 아들, 어릴 때부터 사고 많이 치고, 속만 썩여서 너무 죄송합니다. 앞으로 운동 열심히 해서 효도하겠습니다~!”

 

# 사진_김기윤 부모님 제공, 문복주, 한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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