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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창원시 농구전도사 ’장석구 아저씨, 그의 농구인생과 어시스트
서호민
기사작성일 : 2017-10-04 22:51

[점프볼=서호민 기자] “아저씨 농구 가르쳐주세요!”, “아저씨는 경남 농구의 살아있는 전설이십니다.”, “아저씨 없는 어시스트는 상상할 수가 없네요.” 경남 창원은 명실상부한 농구의 도시다. 프로농구 인기만큼이나 동호회농구 역시 이에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창원시를 비롯 경남 동호회농구 발전을 위해 힘쓰는 농구인들이 많다.

 

창원 어시스트 농구팀의 감독 장석구(51) 씨도 그 중 한 명이다. 오랫동안 지역농구 발전을 위해 큰 힘을 쏟아왔다. 농구가 너무 좋아 아직 노총각 딱지도 떼지 못한 채 농구와 사랑에 빠져있다는 장석구 씨. 경기도 가평의 평범한 시골 소년이 농구와 연을 맺기까지 그리고 그가 직접 창단해 20년 넘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어시스트(Assist) 팀은 어떤 팀인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 본 기사는 2017년 점프볼 9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가평의 시골 소년, 농구와 사랑에 빠지다
경기도 가평 출신의 장석구 씨가 처음부터 농구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어릴 적 그는 교사의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넉넉지 못한 집안형편 때문에 교사의 꿈을 접고 구직을 위해 이곳저곳 전전해야만 했다.

 

농구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은 건 1990년, 자동차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일본 연수를 받던 때다. 어릴 때부터 별다른 취미생활 없이 살아왔던 그를 농구의 세계로 빠져들게 했던 것은 바로 매직 존슨의 플레이 영상이 담긴 비디오테이프 한 장이었다.

 

“당시 일본은 한국과 달리 비디오테이프 보급이 잘 됐어요. 그 때가 한창 마이클 조던과 매직 존슨 등 NBA 붐이 일어날 때라 농구 테이프도 많이 보급됐었죠. 어느 날 우연히 매직 존슨의 영상을 보는데 패스를 정말 기가 막히게 하더라고요. 드리블 없이 패스로만 득점을 올리는 모습이 어찌나 간결하고 멋있던지 그 모습에 홀딱 반했었죠. 한국에 들어와서는 일본에서 구입했던 비디오테이프와 농구 이론서를 매일 같이 보며 농구의 원리, 자세 등을 연구하고 공부했습니다.”

 

 

어시스트(Assist)에 인생을 걸다
그러던 중 그는 1991년 창원 대우국민차(現 GM대우)에 입사하게 되면서 창원과 인연을 시작하게 됐고, 1994년 “도움을 주자”라는 그의 농구 모토를 담아 ‘어시스트(Assist)’라는 농구 동호회를 탄생시키게 된다.

 

첫 해 7명으로 시작한 어시스트는 매년 10명, 20명씩 인원이 늘어났고, 지역 대회인 휘센컵은 물론 나이키, 아디다스 등이 개최하는 각종 전국대회에서도 상위권을 휩쓸며 전국 최고의 동호회 농구팀으로 자리매김 했다. 장석구 씨는 실력을 막론하고 농구 열정이 가득한 이들을 적극적으로 포용했고, 기존의 주입식 훈련방식에서 벗어나 가족적인 지도방식으로 팀원들을 즐겁게 해주는데 목적을 두었다.

 

어시스트 2기의 전형률(37)은 “1994년 창단 당시 창원 가음정에서 아저씨 회사 농구 동아리 부원들과 같이 연습을 하면서 농구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는 오른손 레이업조차 못했는데 아저씨께서 기본기를 친절히 알려주신 덕분에 농구에 흥미를 가지게 됐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3기 배정한(36) 역시 “어릴 적부터 농구를 정말 좋아해 중학교 3학년 때 어시스트에 가입했는데, 당시 팀원들 중에서 유독 농구 실력이 좋아 아저씨를 보조하는 코치 역할을 했어요. 아저씨가 추구하는 농구 스타일과도 잘 맞았죠. 어느 날은 아저씨 집에 찾아가 매직 존슨의 믹스 테이프를 보면서 패스를 연구했는데, 매직 존슨 특유의 노 룩 패스와 비하인드 백패스가 너무 멋져서 거기에 완전 꽂힌 거에요. 그 때부터 아저씨와 함께 패스 연습을 엄청나게했죠”라고 돌아봤다.

 

서두에서 알 수 있듯 어시스트 팀원들은 장석구 씨를 부를 때 ‘감독님, 코치님’이라는 호칭 대신 ‘아저씨’라 부른다. 여기에도 사연이 있다. 4기의 전승환(35)은 “창단 당시 아저씨께서 우리와 같이 농구를 할 때 ‘T-CO’라고 적힌 티셔츠를 자주 입으셨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저씨께서 진짜 티코 자동차를 타고 다니시는 거예요. 그 때부터 ‘티코 아저씨’라고 부르면서 자연스럽게 아저씨라고 부르게 됐죠”라고 사연을 설명했다.

 

200명이 넘는 팀원들을 데리고 20년 넘게 팀을 운영을 하면서 어려운 점도 분명히 있었을 터. 이럴 때마다 수장인 장석구씨가 직접 나서 문제를 해결하고 중재하는 역할을 했다. 배정한은 그 부분이 바로 어시스트의 장수 비결이라 설명했다.

 

“돌이켜보면 팀원들과 이런저런 문제로 싸우기도 참 많이 싸웠죠. 그럴 때마다 아저씨께서 직접 나서서 해결책을 제시해주셨습니다. 덕분에 어시스트가 지금까지 별탈 없이 유지될 수 있던 게 아닐까 싶네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어시스트 팀원들은 매주 토요일 중학교 체육관에 모여 정기연습을 한다. 고등부를 시작으로 20대 청년부 그리고 30·40대 중·장년부까지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농구로 하나가 된다. 장석구 씨는 막내격인 고등부 팀원들이 선배들을 어려워할 것을 걱정해 ‘팀원 이름 맞추기’를 내기로 걸며 팀원 간의 거리를 줄이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성인부 막내인 11기 박경국(28)은 “처음 선배들을 대하는 것이 어려웠었는데 아저씨께서 선·후배 간의 거리감을 줄이려고 굉장히 애쓰셨어요. 한 번은 아저씨가 어시스트 팀원들을 집으로 초대해 라면을 무려 36개를 끓여주신 적이 있어요. 그런 추억들이 쌓이면서 자연스레 어시스트에 의지하게 되고 정이 가게 됐죠. 또 어시스트에는 다양한 직종의 직업을 가지신 분들이 많은데 이런저런 고민이나 문제가 생겼을 시에 그 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처럼 어시스트로 인해 농구뿐만 아니라 인생을 배우게 됐습니다.”

 

고등부 주장을 맡고 있는 21기 최창림(18)도 “매 순간 어시스트 팀의 일원인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낍니다. 아저씨께 농구를 배운다는 자체만으로도 좋죠. 아저씨 없는 어시스트는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라며 “아저씨를 비롯해 선배님들이 쌓아 놓은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저희가 더욱 노력해서 역사를 계속 이어 나갈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꿈나무 양성과 지역농구발전을 위해 힘쓰다
장석구 씨의 농구사랑은 단순히 어시스트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더 나아가 꿈나무 양성과 지역농구발전을 위해서도 힘을 쏟았다. 그는 마산·창원 지역에서 농구선수를 꿈꾸는 학생들을 찾아가 그들의 진로를 열어주고 또 시간이 날 때마다 원포인트 레슨을 하기도 했다.

 

선수들을 가르치는 일에서 설렘과 보람을 느꼈다. 무엇보다 어릴 적 교사를 꿈꾸었던 그가 농구를 통해 후배들을 가르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었다. 현재 프로에서 활약 중인 최준용(SK)과 박재한(KGC), 김광철(모비스)을 비롯 아마에서 활약하고 있는 양준우(성균관대)와 한준혁(前 동국대) 등도 모두 장석구씨의 손길을 거쳤다.

 

성균관대 농구부 1학년에 재학 중인 양준우는 “제가 김해에 있을 때 주말마다 아저씨를 찾아가서 농구를 배웠어요. 사계절 날씨와 상관없이 공만 있으면 어디서든지 연습을 했죠. 추운 겨울에 손가락이 찢어질 때까지 아저씨와 드리블 연습을 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지금 제가 이렇게 농구를 재밌게 할 수 있는 것도 다 아저씨 덕분입니다”라며 어린 시절 장석구 씨와의 추억을 회상했다.

 

프로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한준혁도 이야기를 들려줬다. “용산고와 동국대 시절에는 휴가를 받을 때마다 아저씨 집에 놀러가 농구를 배웠어요. 그 때 아저씨 덕분에 슈팅 핸드를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바꿀 수 있었죠. 한 번은 아저씨가 저한테 ‘그것도 못해? 힘들지? 그만하고 집에 갈까? 에이 못해, 못해 거 봐 안 되잖아’라고 말씀을 하셨던 적이 있어요. 그 때 제가 자극을 받아 더 하게 되고, 될 때까지 연습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이외에도 장석구 씨는 지역 농구 인프라 구축과 저변 확대에도 직접 나섰다. 과거 길거리 농구 불모지였던 창원이었지만 지금은 동네 곳곳에 농구를 즐길 수 있는 우레탄코트가 만들어져 있을 정도로 인프라가 발전했다. 장석구 씨 또한 지자체 및 농구협회 등의 관계자들을 설득하며 농구 인프라 확충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지금은 농구 인프라가 많이 개선이 됐지만 예전에는 흙바닥과 나무판대기 골대를 두고 농구를 했을 정도로 시설이 많이 열악했어요. 지자체에 해당 관계자들을 찾아가 이 문제를 가지고 설득하며 싸우기도 많이 싸웠습니다. 또 시간이 날 때 창원시에 있는 야외 농구코트를 돌아다니며 그물망을 직접 설치하고, 군데군데 결함이 있는 골대가 있으면 구청에 개선을 요구하기도 했었죠.”

 

하지만 그는 여전히 농구 동호인들이 운동할 수 있는 여건과 시설이 부족하다고 강조한다.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은데 안타깝게도 뛰어놀 수 있는 체육관이 그리 많지 않아요. 창원시의 경우에는 휴일과 방학 중에 학교 체육관 개방이 안 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학교장이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 학교장들은 사고를 우려해 체육관 사용 허가를 잘 안 해주는 편이에요. 교육청에 문의를 하면 지자체 예산 지원이 부족하다 하고, 관리 문제 등의 이런저런 핑계를 대기 일쑤죠. 또 해당 관계자들의 부서 이동이 잦아 문제가 좀처럼 해결되기 쉽지 않습니다.” 

 

 

농구를 통해 얻은 보람과 소망
그렇다면 장석구씨가 농구를 통해 얻은 가장 큰 보람은 무엇일까. “가끔씩 혼자 있을 때 내가 왜 이러고 있을까, 왜 내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농구에 올인하고 있을까. 생각을 해요. 지금도 이게 욕심인지 보람인지 정답을 못 내리겠어요. 흔히 인생을 살아가면서 제일 좋은 것이 ‘친구’라고 많이들 얘기하잖아요. 마찬가지로 저를 통해서 농구를 같이 하는 아이들이 친구가 되고 추억을 쌓는 모습들을 보면서 감동을 느낍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마지막 소망 역시 ‘농구’와 관련이 있었다.

 

“어시스트뿐만 아니라 전국에 있는 모든 농구동호회가 큰 분열 없이 상생해 아마농구가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 더 나아가 엘리트 농구에도 구타와 폭언 등 구시대적인 교육 방식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닌, 칭찬과 격려로 인격을 존중해주는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BONUS ONE SHOT│장석구씨가 말하는 패스 플레이의 중요성

장석구씨는 유기적인 패스웍을 바탕으로 5명 모두가 빠르게 속공에 가담하는 속공농구를 추구한다. 특히 그는 빅맨들의 리바운드 후 첫 패스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했다. 어시스트 훈련현장에서도 그는 팀의 빅맨들에게 언더 패스, 오버 패스, 베이스볼 패스, 노룩 패스 등 다양한 패스 방법들을 세심하게 가르치는 모습이었다. 

 

그는 “빅맨들이 리바운드를 잡은 후 원핸드 베이스볼 패스로 앞에 뛰는 가드들에게 전달이 가능하다면 그것만큼 좋은 득점 루트가 없을 것입니다”라며 “반대로 세트 플레이 상황에서도 언제든지 패스로만 득점을 올릴 수 있습니다. 단 가장 중요한 건 5명 모두 시야를 넓혀 빠르게 패스를 전개해야 되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NBA 샌안토니오 스퍼스 특유의 패스웍을 참 좋아합니다. 빠른 패스웍으로 끊임없이 찬스를 만들고 그 찬스를 메이킹 하는 장면들이 정말 아름답기 그지없죠.”

 

이어 그는 “위의 단계들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노룩 패스를 배우게 됩니다. 노룩 패스의 생명은 실수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만큼 엄청난 연습과 훈련들이 필요하죠. 이처럼 드리블 없이도 수많은 패스로 득점을 올릴 수 있습니다.”라며 끝으로 그는 뼈 있는 한마디를 남기며 인터뷰를 마쳤다. “가장 빠른 드리블은 패스라고 생각합니다” 

 

# 사진=서호민 기자, 어시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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