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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씬스틸러 : 우리은행 홍보람 "많이 뛰고 많이 이기니 행복하다"
이원희(mellorbiscan@naver.com)
기사작성일 : 2017-10-02 16:16
[점프볼=이원희 기자] 우리은행 위비 홍보람(29)은 지금도 2016-2017시즌이 꿈만 같다고 했다. 프로 데뷔 10년 만에 처음으로 풀타임을 소화했고,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홍보람은 2016-2017시즌 35경기 전 경기에 출전해 평균 3.0점 2.3리바운드를 기록했다. 평범한, 아니 그리 눈에 띌 것 없는 기록임에도 불구, 위성우 감독은 홍보람 이야기만 나오면 ‘대단한 선수’라고 치켜세웠다. 박혜진, 임영희 등 공격력이 좋은 팀원들 사이에서 악착같은 수비로 뒤를 받쳐줬기 때문이었다. # 본 기사는 농구전문잡지 2017년 9월호에 게재된 글임을 밝힙니다.

홍보람은 평범한 선수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묵묵히 제 할 것만 하고 돌아오는 타입이다. 공격보다 궂은일이 먼저다. 주인공 대신에 동료들을 밀어주는 도우미 역할을 자처한다. 팀이 이겨도 남들이 잘해서 승리했다는 말을 해왔다. 10년 동안 그랬다.

홍보람은 2007년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5순위로 삼성생명의 지명을 받아 프로에 데뷔했다. 삼성생명 시절에는 ‘3점 슈터’로 꽤 이름을 날렸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3시즌 동안 주전으로 활약했다. 국가대표도 경험했다. 2013년 윌리엄 존스컵에 출전해 우승에 일조했고, 그 다음해(2014년)에는 FIBA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 나섰다. 하지만 2014-2015시즌 KEB하나은행으로 이적한 뒤 출전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이적 첫 시즌이었던 2014-2015시즌 18경기 출전해 평균 14분 51초를 뛰는데 그쳤고, 2015-2016시즌에는 26경기에 나서 평균 12분 40초를 뛰었다. 극적인 위닝샷을 종종 터뜨리며 기쁨의 눈물도 흘렸지만, 출전 시간을 향한 갈증을 완전히 해소해주지 못했다.

그래서 2016-2017시즌은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매 경기 라인업에 자신의 이름이 올랐고, 시즌이 깊어질수록 뛰는 시간도 늘었기 때문이다. 홍보람은 “지난 시즌은 여러 의미가 있는 시즌이었다. 프로에 있으면서 처음으로 통합 우승을 차지했고, 리그 전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다. 챔피언결정전 3경기에도 모두 뛰었다. 많이 이겨서, 그리고 많이 뛰어서 기분이 좋았다. 선수는 아무리 힘들어도 코트에 서 있을 때 가장 행복한 것 같다. 우리은행으로 이적하자마자 감격스러운 성과를 이뤄 행복하다”고 말했다.
출전 시간이 늘어난 비결은 단연 수비에 있었다. 우리은행에는 박혜진과 임영희 등 뛰어난 공격 자원을 여럿 보유한 팀이다. 박혜진은 2016-2017시즌 평균 13.5점 5.1어시스트, 임영희는 평균 12.7점 3.8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공격력으로는 이들을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결국 홍보람은 한 가지 다짐을 하게 됐다. 탄탄한 수비를 자신만의 장점으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마침 포인트가드 이은혜가 부상을 이유로 정상 컨디션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홍보람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주전 자리를 꿰찼다. 

“경기에 뛰려면 수비를 잘해야 했다. 공격력이 좋지 않으니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었다. 프로 세계는 냉정하더라. 잘하는 것이 없으면 경기에 뛰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상대 에이스라도 막아야 경기에 나설 수 있었고 악착같이 상대 선수들을 따라다녔다. 그래서 출전 기회를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잘하는 것만이라도 열심히 하자는 생각으로 코트에 들어섰다. 아직 수비 센스가 뛰어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집중력을 가지고 상대 선수들을 맡고 있다. 팀에 공격력이 좋은 선수들이 많아서 제가 굳이 공격을 안 해도 된다. 저도 공격에 큰 욕심이 없다. 슛 기회가 날 때 공을 던지는 것으로 만족한다”면서 “처음에는 우리은행의 베스트 멤버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몸도 제대로 만들지 못했는데 (이)은혜가 안타깝게 다쳐 경기에 들어갈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동료들이 많이 도와주면서 다행히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위성우 감독님, 전주원, 박성배 코치님도 많은 조언을 해주셨다. 주위 분들의 노력으로 별 다른 문제없이 시즌을 소화했다”고 공을 돌렸다.
농구 선수가 아닌 커피숍 매니저로

홍보람은 은근히 굴곡진 프로 생활을 보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농구공을 잡았다. 부모님의 든든한 지원 아래 자신의 꿈을 펼쳤다. 홍보람의 부모님은 딸의 꿈을 위해 아낌없는 도움을 주셨다. 초등학교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농구부 팀원 전체를 태우고 학교와 집을 오가는 차량 지원을 자원했다. 홍보람은 “지인 중에 농구부 코치님이 계셨다. 어렵지 않게 농구를 접했고 그것이 제가 농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부모님은 딱히 반대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밀어주셨다. 부모님께서 제가 농구를 좋아하니 도와주셨다고 했는데, 생각해보면 부모님이 더 좋아하신 것 같다. 항상 비디오를 들고 와 저를 찍어주셨고, 지금도 항상 경기장에 찾아와 응원해주신다. 제가 우리은행으로 이적하고 난 뒤 경기에 많이 뛰는 모습을 보고 부모님께서 정말 좋아하신다. 이제는 친언니도 와서 보고 간다”고 웃었다.

하지만 농구 인생이 항상 행복했던 것은 아니었다. KEB하나은행 시절 출전 시간이 줄어들고 잦은 부상까지 당해 큰 좌절에 빠졌다. 홍보람은 KEB하나은행 유니폼을 입고 대부분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출전 시간은 평균 10분을 겨우 넘겼다. 그렇게 2년여 세월이 흘렀다.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자 홍보람은 구단에 “농구를 그만하고 싶다”는 의지를 표명했고, KEB하나은행도 2015-2016시즌을 마치고 그를 임의탈퇴 시켰다. 농구 유니폼을 벗은 홍보람은 커피숍 매니저로 일했다. 

홍보람은 “좋은 경험이었다. 사회는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직접 경험해보니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특히 쉬운 게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농구도 그렇고 사회생활 역시 힘들었다. 바리스타 학원에 다니며 열심히 공부했다. 직접 커피도 내릴 줄 안다. 기회가 돼 카페 매니저로 들어가 사장님 대신 매장 관리를 했다. 아르바이트생들을 직접 교육하면서 밤늦게까지 카페 일을 했다. 오후 11시에 문을 닫고 집에 들어가면 새벽 1시였다. 아침이면 다시 출근했다. 그렇게 주 6일로 일했다. 제 생활이 없었다. 카페 매니저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또 밝은 표정으로 손님을 대하는 것이 어려웠다. 평생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어서 무척 어색했다”고 회상했다.

6개월이 지난 뒤 홍보람은 다시 코트로 복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홍보람은 “주위에서 은근슬쩍 제가 농구를 다시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모님도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셨다. 주위에서 모두 그런 말을 하시니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농구가 그리웠다. 무엇보다 명예회복을 하고 싶었다. 출전 시간이 적어서 나오기는 했지만, 다시 자유롭게 코트를 누비고 싶었다”고 했다. 홍보람은 KEB하나은행에 복귀하고 싶다는 말을 전달했고, 마침 우리은행이 홍보람을 영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홍보람은 박언주와의 1대1 트레이드로 우리은행에 들어갔다. 
우리은행이라는 자부심으로

홍보람이 다시 코트로 돌아왔다. 삼성생명, KEB하나은행이 아닌 우리은행이라는 새로운 팀에서 복귀했다. 우리은행은 여자프로농구 최강팀이다. 2016-2017시즌 역대 최고 승률(33승2패)로 정규시즌을 마감한 뒤 챔피언결정전에서도 삼성생명을 3전 전승으로 손쉽게 제압해 통합 5연패를 달성했다. 홍보람에게는 첫 통합 우승이었다. 홍보람은 “통합 우승을 차지해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이대로 우승 한 번 못해보고 은퇴하나 싶었는데 좋은 팀, 좋은 선수들을 만나 꿈을 이루었다. 정상에 오를 수 있어서 모두에게 고마웠다. 통합 우승 기념으로 팀 전체적으로 두바이로 여행을 떠났다. 언제 두바이로 여행을 떠나보겠나. 통합 우승에다 두바이 여행까지 하게 돼 너무 좋았다”면서 “우리은행은 우승팀이라는 묵직함을 느낄 수 있는 팀이다. 지난 시즌 최고참 (임)영희 언니부터 시작해 은퇴한 (양)지희 언니까지 솔선수범해 훈련을 소화했다. 선배들이 먼저 나서서 훈련하니 밑의 선수들이 따라갈 수밖에 없다. 덕분인지 우리은행 선수들은 체력이 상당히 좋다. 저는 경기를 뛰면 뛸수록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는데 다른 선수들은 더 치고 올라왔다. 그 부분이 저와 다른 선수들의 차이점이었다. 아무래도 위성우 감독님과 오랫동안 함께 했으니 단련이 돼 있는 것 같았다. 저는 아직 1년밖에 함께하지 못했다. 더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홍보람의 말대로 위성우 감독은 특별한 지도자다. 선수들을 한계의 최대치로 내몰면서 성장을 이뤄내는 명장이다. 그의 지도 덕분에 임영희, 양지희, 박혜진 등 여러 선수가 리그 정상급 반열에 올라섰다. 우리은행 선수들은 위성우 감독의 스파르타식 훈련이 힘들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즌을 마친 뒤에는 위성우 감독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다고 고마워했다. 홍보람도 똑같았다. 홍보람은 “6개월가량 사회생활을 지낸 뒤 다시 운동을 시작하려니 너무 힘들었다.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이게 꿈인가 싶었다. 하지만 위성우 감독님이 아니었다면 전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감독님 덕분에 몸 상태가 많이 올라와 지난 시즌 전 경기를 소화할 수 있었다. 우리은행에 합류하자마자 훈련을 엄청나게 시켰던 것이 기억난다. 어떻게 버텼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때는 감독님께서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훈련을 시키셨다. 그래서 고된 훈련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전주원, 박성배 코치님도 시즌 내내 많은 도움을 주셨다”며 코치진 모두에게 고마움을 돌렸다.

홍보람도 강한 선수였다. 명예회복을 하겠다는 다짐 하나로 한 시즌을 쉼 없이 달려왔다. 잠깐 방황도 있었지만 코트에 복귀한 홍보람은 그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다. 홍보람은 “개인 성격이다. 농구가 잘 안 돼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그 상황에 부딪혀 이겨내려고 했다. 무언가 잘 풀리지 않을 때는 훈련으로 극복하려고 한다. 안 힘든 선수가 어디 있겠나. 모든 선수처럼 저도 부진할 때가 있었고 부상도 많이 당했다. 최근에는 발가락 부상을 입어 고생했다. 재활과 훈련을 병행하다 다시 본격적으로 몸을 만들고 있다. 또 열심히 훈련해 몸을 만들어야 한다. 힘들지만 그래야 마지막에 웃을 수 있다”는 각오를 보였다.

최근에는 절친한 동료도 다시 만났다. 우리은행은 2016-2017시즌을 마치고 KEB하나은행의 에이스였던 김정은을 FA로 영입했다. 김정은은 온양여고를 졸업하고 지난 2005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KEB하나은행의 전신인 신세계에 입단. 데뷔시즌부터 11.8점 4.9리바운드로 신인상을 받았다. 이후 리그 정상급 선수로 성장해 국가대표 주전 포워드로도 활약했다. 통산 평균 16.0점 5.0리바운드 2.5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하지만 최근 2년간 무릎 부상으로 출전 시간이 줄어들면서 팀 내 입지도 좁아졌다. 결국 김정은은 정든 KEB하나은행을 떠나 우리은행으로 이적했다. 홍보람에게는 반가운 일이다. 홍보람과 김정은은 서로를 위해주는 따뜻한 동료 사이였다. 홍보람은 “KEB하나은행에 2년 동안 있을 때 (김)정은 언니와 친하게 지냈다. 우리은행에 와서 든든하다. KEB하나은행에 있을 때는 제가 경기에 많이 못 뛰어 정은 언니의 위로와 도움을 받았다. 지금은 제가 정은 언니를 돕고 싶다. 새로운 팀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관심을 쏟도록 하겠다.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무엇이든지 해주고 싶다”고 반겼다. 

고초를 이겨내며 더 단단해진 홍보람. 우리은행에서 승리의 기쁨을 만끽한 만큼, 또 다른 기쁨을 향한 노력도 계속될 것이다. 위성우 감독을 비롯한 우리은행의 다른 선수들이 그래왔듯 말이다. 지금처럼 수비에 집중하고, 뛰는 즐거움을 누린다면 홍보람에게도, 우리은행에게도 ‘보람찬’ 나날이 계속되지 않을까. 

#사진=W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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